학생 “교사 성희롱, 더 이상 못 참겠다” vs 학교 “대자보 부착 승인 받아야”
‘학생들 표현의 자유 막을 수 없어’ 학생인권조례 명시돼 있지만…
전문가 “대자보 훼손은 남의 입을 막는 반 민주적 행태”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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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효원 기자] 최근 학생들이 교내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등에 저항하며 교내에 대자보, 포스트잇을 붙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교는 대자보 등을 몰래 떼어가거나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제재를 가해 학생들과 학교 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6일 SBS는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사의 성희롱을 더는 못 참겠다며 스쿨 미투를 시작하고 교내 곳곳에 대자보와 현수막을 붙였지만 학교 직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이를 떼내는 실랑이가 이틀간 되풀이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넉 장짜리 대자보에는 이 학교 일부 교사들의 부적절한 성희롱성 발언을 고발하는 내용과 일부 교사들이 여성을 종종 상품에 비교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재학생들은 “교실에서 자습을 하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들어와 바르게 앉아 있음에도 똑바로 앉으라고 척추를 쓸고 등을 만지며 자세 교정이라는 명목으로 성추행을 했다”, “선생님한테 잘 보여야지 생활기록부 잘 써준다”라며 불쾌한 신체 접촉도 언급했다.
또 지난달 울산의 한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SNS를 통해 수년간 교사들의 성희롱과 폭언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졸업생들은 “학교가 교내 성희롱 사건들을 쉬쉬하며 사과 한마디 없이 넘겨버렸다. 이번에야말로 학교의 진실된 사과와 변화를 요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글쓴이는 “‘2017년 남자 기숙사 사감이 여학생 기숙사 방을 검사하는데 속옷통을 뒤졌다’는 내용이 교내에서 공론화되자 교장선생님은 여학생 기숙사 검사를 남자선생님이 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일주일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스쿨 미투’가 시작된 후 학내 보도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붙였지만 학교 측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대자보를 철거한 뒤 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울산시교육청은 사태 파악에 나섰고, 시 교육청 관계자는 “피해 학생들과 면담을 통해 진상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스쿨 미투’에 연루돼 경찰 조사를 받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1일 대전 유성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48분께 대전 유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교사 A씨(48)가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관리원이 발견했다.
A씨는 지난 9월 대전 모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스쿨 미투’사건으로 고발돼 경찰 조사를 받아왔다. 당시 SNS에서 해당 학교 교사들이 “옷 벗고 기다리면 수행평가 만점”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학생들의 주장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전시교육청이 학생, 교원 대상 특별감사를 진행한 결과 일부 교사가 학생들에게 강제추행을 시도, 수업 중 성차별 발언을 일삼는 등 학생 인권을 침해한 것이 확인됐다.
바닥에 버려진 스쿨 미투 포스트잇. 사진=SNS 캡처 |
◆학내 성범죄, 3년 새 2배 급증...관련 법안 처리 ‘0’
실제로 학내 성범죄 실태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미비하다. 최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교폭력 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심의한 성폭력 사건은 2012년 642건, 2014년 1429건, 2016년 2387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학폭위가 다루는 전체 학교폭력 심의 건수 가운데 성폭력 심의 건수가 차지하는 비중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13년 4.9%에서 2015년 9.2%, 2016년 10.0%으로 3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
학생들이 교내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에 대해 교내에 대자보, 포스트잇을 붙이는 사례는 늘고 있지만 일부 사립학교의 경우 징계권이 학교법인에 있어 봐주기 징계 및 미온적인 처분 등이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은 총 16건이지만 처리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일각에서는 피해 학생들의 2차피해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스쿨미투 고발 학생들이 신상털기와 언어폭력에 노출되면서 2차 피해를 입었다”며 “학교차원에서의 재발방지가 필요한 실정”라고 말했다. 최근 인천 부평구 한 중학교에 붙은 대자보에는 ‘특정 젠더의 신체를 품평하거나 외모를 무차별적으로 비하하고 수업 시간에도 성적 언행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진다’고 지적했지만 그 밑에 ‘학년, 반, 번호를 까라’는 조롱이 이어지기도 했다.
또 일부 학교에서는 대자보 등을 붙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훼손, 일부 학생들이 2차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해 경기학생인권의광장 관계자는 “학생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이 있는 교칙이 발견될 경우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이를 삭제하라고 학교 측에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고질적 문제가 아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고 지적했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대표는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자보를 찢거나 욕을 하는 건 남의 입을 막아버리는 반민주적인 행태다. 스쿨 미투가 제기됐는데 학교가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피해자 탓으로 돌려 버리면 나머지 학생들도 의견을 민주적으로 표현하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학교라는 공동체가 용기있는 고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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