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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기자24시] 오너들이 기업 팔고 부동산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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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중견기업 오너들이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창업 기업을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부동산을 사고 있다. 2년 연속 오너 중견기업 매각 규모가 3조5000억원이다. 매해 팔리는 중견기업 규모가 국내 대형 면세점·호텔 기업인 호텔신라 시가총액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시계를 되돌려보면 불과 2년 전인 2016년에는 오너 보유 중견기업 매각 규모가 2조원을 넘지 않았다. 이처럼 상황이 급변한 이유는 어디 있을까. 일단 경제 저성장이 가장 큰 이유로 첫손에 꼽힌다. 국내 시가총액 상위 30위 기업 중 지난 10년간 개인 창업 기업으로 새로 진입한 기업은 서정진 회장이 이끄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단 2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살아남은 기업들도 모두 아우성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 중 사정이 그나마 나은 곳은 반도체 호황 국면 수혜를 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정도뿐"이라며 "반도체 경기가 꺾일 경우 모든 산업에 걸쳐 '곡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근면하고 성실한 데다 우수한 인적자본을 바탕으로 전 세계 최고 수준 경쟁력을 자랑하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경제 성숙 과정에서 어쩌면 필연이다. 그러나 성숙화된 경제에서도 살아날 길은 있다. 바로 혁신성장이다.

인구 고령화 등 트렌드를 읽고 바이오시밀러라는 틈새 영역을 공략한 서 회장과 같은 개척자 정신이 혁신성장을 이끈 대표 사례다. 그러나 셀트리온마저도 제대로 된 국내 투자자를 찾지 못해 해외 투자자를 끌어들여 간신히 회사를 발전시켜나갔다. 그가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동안 국가가 해준 게 무엇이 있었을까.

중견기업 오너들이 자식들에게 기업이 아닌 부동산이나 현금을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단순히 경제 저성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기저 효과로 연 6.5%를 기록한 이후로 줄곧 연 4%를 밑돌았다. 저성장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을 지키고 싶은 희망과 기업을 팔고 부동산을 사고 싶은 욕망 간 갈등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금은 기업을 때릴 때가 아니다. 기업 경영보다 부동산을 선호하는 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이 시점에 묻고 싶다. "이게 나라냐?"

[증권부 = 한우람 기자 amu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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