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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미니정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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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초기 해상무역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아시아에도 이 두 나라가 가장 먼저 진출하였다.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581년, 네덜란드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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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모습./그림=위키피디아



네덜란드는 158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에 거점을 두고 본격적으로 아시아 진출을 시작하다가 자국 기업끼리의 출혈경쟁을 막기 위해 연합 회사를 설립하는데, 그 이름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다. 일반인들에게도 투자를 공개해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주식회사라는 평가를 듣는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공식적으로 1602년부터 1799년까지 존재하면서 2세기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큰 기업이었다. 국가로부터 상당한 공권력을 부여받은 ‘국가 밖의 국가’였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는 이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주변 군도, 대만 북부를 점령하고 중국 본토와도 교류를 텄으며 일본과는 나가사키 앞의 인공섬 데시마에 상관(商館)을 개설하고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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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로고가 있는 현판./사진=위키피디아



하멜이 활동하던 17세기 중엽에는 인도, 아라비아, 대만, 일본 등 20여 곳에 상관(商館)을 개척한 뒤 각 지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아시아의 후추나 향료를 유럽에 실어 나르는 사업 뿐 아니라, 아시아 각지에 뿌리내린 네트워크의 역내 무역을 통해 더 큰 돈을 벌고 있었다. 암스테르담 은행에 저장된 금괴와 은괴만 3억 길드였다는 천문학적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큰 부를 축적하였다.

17세기 중반까지 가장 중요한 상품은 후추로 전체 교역의 50% 이상을 차지했지만 후추의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면서 17세기 후반부터는 직물이 점차 더 중요한 물건으로 떠올랐다.

식민지 경영과 타국과의 경쟁을 위해 군사력은 이 회사의 핵심요소로 17세기 초반에는 병사가 3천 명 정도에 불과했으나 1,750년경에는 1만 7천 명에 이르렀다.

암스테르담 인근 ‘잔’(Zaan) 지역은 풍차를 이용해 선박을 제조하던 세계최초의 산업화 공단지역이었다.

최초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EIC)는 영국이 세웠지만 17세기에는 조직이나 영향력 면에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훨씬 앞섰다.

그러나 영국과의 해상 전쟁에서 패하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역점을 둔 사업방식이 인도를 적극 공략한 영국에 밀려 사업 경쟁력에 한계를 보이며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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