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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한강 父 한승원 “딸, ‘전쟁 치열한 세상… 잔치 열 수 없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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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작가가 11일 오전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한승원문학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학관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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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는 ‘기자회견을 안 할 것’이라고 했어요.”


원로 소설가 한승원(85)은 11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이같이 말했다. 한승원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54) 작가의 부친이다.

한승원 작가는 이날 딸 한강 대신 기자들 앞에 나서면서도 “소감을 제대로 들으려면 잘못 찾아왔다”며 “나는 껍질이다. 알맹이(한강)를 찾아가야 제대로 이야기를 듣는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한승원 작가는 “(전날 딸에게)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세 출판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장소를 마련해 기자회견을 하라고 했는데 (딸이) 그렇게 해보겠다고 하더니 아침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어 “(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고 말했다”며 “양해해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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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11월 문학사상사 주관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한강 작가(오른쪽)가 아버지 한승원 작가(왼쪽)와 함께하고 있다. /문학과사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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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작가는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접했을 당시 소감도 생생하게 밝혔다. 그는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즐겁다고 말할 수도 없고, 기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늙은 작가나 늙은 시인을 선택하더라. 우리 딸은 4년 뒤에야 타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며 “어제도 (발표 일정을) 깜빡 잊고 자려고 자리에 들었다가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승원 작가는 전날 잠을 청하며 자리에 누웠을 무렵 한 기자의 연락을 받고 딸의 수상 소식을 알았다고 한다.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그는 도리어 전화를 건 기자에게 “혹시 가짜뉴스에 속아서 전화한 것 아니냐”며 되물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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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작가가 11일 오전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한승원문학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딸의 노벨상 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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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문학세계에 대해 한승원 작가는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강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작인 ‘붉은 닻’은 제목과 첫 문장부터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시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심사위원들이 아름다운 문장이라든지, 아름다운 세계를 포착했기 때문에 한 세대 위가 아닌 후세대(한강)에게 상을 줬다”며 “그러니까 우리 강이한테 상을 준 것은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며 기쁨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딸이) 여려서 큰일을 당하면 잠을 못 자고 고민하는데 어젯밤에도 새벽 3시에나 잠을 잤다고 한다. 몸이 건강해야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있다”고 말하며 딸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 父女가 이상문학상 나란히 수상… “딸은 가장 좋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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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11일 자신의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정자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회를 밝히고 한강(왼쪽 두 번째)의 성장기 시절이 담긴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한승원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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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작가는 1968년 등단해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소설집 ‘새터말 사람들’ 등을 펴낸 국내 대표 원로 작가 중 한 명이다. 한승원·한강 부녀는 이상문학상을 2대에 걸쳐 수상한 진기록을 지닌 가족이기도 하다. 문학 속 세계를 만드는 능력을 빼다 박은 자식이지만 딸에게 소설 쓰는 법을 따로 가르치지는 않았다.

한승원 작가는 “딸한테 방 하나를 따로 줬는데 한참 소설을 쓰다가 밖에 나와보면 딸이 안 보였다”며 “이 방, 저 방 다녀서 찾고 그랬는데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공상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돌이켰다. 딸이 고등학생 시절 한글날 글짓기 대회에 출전해 텔레비전을 ‘말틀’이라고 부르겠다고 표현해 상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이것이 한강 작가의 유일한 학창 시절 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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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한승원문학관) 작업실에 노벨상 소설가 한강이 아버지 한승원 작가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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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어떤 딸이냐’는 질문에 한승원 작가는 “효도를 많이 한 딸”이라고 답했다.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딸을 승어부(勝於父)라고 하는데 나는 평균치를 약간 넘어선 사람이다. 평균치를 뛰어넘기도 힘든데 평균치를 뛰어넘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뛰어넘은 아들·딸은 더욱 훌륭하다”며 한강을 치켜세웠다.

작가 한강을 한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는 한승원 작가는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느냐”며 겸연쩍게 웃고는 답했다. “시적인 감수성을 가진 좋은 젊은 소설가입니다.”

김태호 기자(t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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