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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사설] ‘풍등’보다 허술한 안전관리가 큰불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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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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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발생한 경기 고양시 저유소의 큰불은 한 외국인 노동자가 호기심에서 날려보낸 풍등(소형 열기구)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9일 경찰은 한 외국인 노동자(27·스리랑카)가 저유소 인근 공사장에서 날려보낸 풍등의 불씨가 저유소 탱크 바깥 잔디에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중실화죄 혐의로 이 노동자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경찰 발표대로 풍등의 불씨가 화재의 직접 원인이라고 해도, 더 큰 문제는 저유소 시설의 허술한 안전관리 시스템일 것이다. 지름 40㎝, 높이 60㎝의 작은 풍등 불씨가 저유소 탱크에 있던 휘발유 260만리터를 태우고 진화에 17시간이 걸렸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일차로 저유소 시설 관리 주체인 대한송유관공사의 책임이 무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송유관공사는 잔디에 불이 붙은 지 18분이 지나도록 화재 발생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휘발유 탱크 외부에 화재감지 센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또 송유관공사 관제실에 설치된 46대의 이동식·고정식 폐회로텔레비전(CCTV)에서 20초 단위로 영상을 내보내고 있었지만 아무도 화재 발생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송유관공사는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유증기를 자체적으로 제거하는 장치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장치는 탱크 안에서 발생하는 유증기를 액체로 만들어 바깥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고양 저유소에는 유증기 환기구만 있고 제거 장치가 없었던 탓에 외부에서 발생한 불씨가 환기구를 통해 탱크로 옮겨붙을 수 있었다. 누군가 고의로 저유소 주변 잔디에 불을 놓으면 언제든지 큰 화재로 번질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참으로 아찔하고 기가 막힌다.

정부의 안전관리 제도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고양 저유소는 유류 저장 탱크가 모두 20개이며 총 저장 용량이 7700만리터에 이른다. 불이 다른 탱크로 번져 연쇄 화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고양 저유소를 포함해 전국에 저유소가 8곳 있는데 판교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지정한 기준(1억5000만리터)에 못 미쳐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안전점검에 소홀했다는데, 한심할 뿐이다.

정부는 저유소를 비롯한 각종 위험 시설물의 안전관리 실태를 철저히 점검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저유소 같은 시설의 사고는 한순간에 많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갈 수 있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재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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