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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한국사회 성평등 조직 문화 이끄는 좋은 모델 만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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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KBS 첫 성평등센터장 이윤상씨

한겨레

<한국방송>(KBS)은 지난 1일 한국성폭력상담소장과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을 지낸 이윤상(48)씨를 사장 직속 상설기구인 성평등센터의 장으로 임명했다. 앞서 한국방송은 직제 개편을 통해 센터를 신설하고 외부 전문가 대상으로 센터장을 공모했다.

센터의 임무는 성평등 조직 문화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성폭력건 접수 및 처리, 성폭력 예방과 교육, 성평등 관련 위원회 운영 등이다. 언론사에서 성평등센터 기구 설립은 처음이라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성 평등 조직 문화를 선도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이 센터장을 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거대 조직인 방송사의 새 기구 책임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케이비에스는 언론사이지만 공기업이다. 좋은 결과를 이끌어 우리 사회의 성평등 조직문화 확산에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바람직한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평등센터 출범까지는 진통이 컸다. 양승동 사장이 지난 4월 취임 뒤 전 정권에서 있었던 불공정 보도와 제작자율성 침해 등을 조사하기 위한 과거 청산기구로 ‘진실과미래위원회’가 구성됐다. 애초 진실위, 미래위, 성평등위 등 3개분과로 논의됐으나 이사회에서 성평등위는 일회성에 그칠 게 아니라 선진적으로 나가야 한다며 상설기구화를 제안했다. 이후 일각에선 성평등센터에 조사 권한을 주는 것은 감사 직무권한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전 경영진 지지세력에 대한 사생활 보복이라는 반발도 나왔다. 사쪽은 법 위반이 아니라는 법률 자문을 거치고 센터 설립을 최종 결정했다. 이 센터장은 “성폭력 조사 과정은 피해자 보호와 묶여있다.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지 않도록 밀착 지원하는 게 주요 업무”라고 했다. 감사와는 다른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선 센터의 역할을 정확히 알리고 구성원의 신뢰를 받는 데 운영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한국방송은 정규직만 4615명(9월1일 기준, 지역 포함)이다. 비정규직도 정확히 헤아릴 순 없지만 상당한 규모다. “아직 사내에서도 기대반 우려반의 시각이 있다고 들었다. 꼭 필요한 조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성폭력 사건 처리하는 곳으로 오해해 그런 조직이 있어야 할 정도로 우리가 문제가 많냐고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언론사 첫 성평등 상설기구
성폭력 처리서 제도개선까지
센터장·부장 포함 직원 6명
“구성원 젠더 감수성 키워
성차별·막장 드라마 막을터”


서울시민인권보호관도 지내

센터 직원은 그와 성평등부장을 포함해 모두 6명이다. 이 가운데 성폭력 성희롱 사건 상담을 지원하는 인력은 외부 전문가 중에 충원할 예정이다.

그는 기업이나 기관에서 성폭력 또는 성차별 사안이 터졌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지는 않는다고 최근 추세를 전했다. 문제는 우왕좌왕하다가 시간을 끌며 2차, 3차 피해로 이어져 고통과 아픔이 배가되면서 조직이 신뢰를 잃게 된다는 점이다. “고충 사안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처리된다고 직원들이 느끼면 신뢰도 얻는다. 이를 바탕으로 실태조사나 면담, 토론회도 이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바쁜데 무슨 실태조사냐며 외면당할 수 있고 결국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다.”

방송 콘텐츠의 성차별과 여성 인권 침해는? 그는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니만큼 센터 역할이 확장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시청자들은 매스미디어를 접하며 여러 영향을 받는다. 성평등센터가 생겼다는데 성차별이나 막장드라마가 여전하면 케이비에스가 욕먹지 않겠나”라며 성평등 방송을 위해 “심의실과 협업 등 가이드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만드는 사람의 인식이 중요한 만큼 구성원들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사는 야근 등 노동강도가 심하고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가 강했던 곳이다. 언론사마다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보도의 편집과 방향 등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여성 간부는 여전히 소수다. 한국방송도 팀장, 부장급은 늘고 있으나 본부장(6명)은 아직 한명도 없다. 그는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선 제도적인 부분과 비제도적인 부분이 있다. 평가와 승진제도가 성별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연구해보겠다. 비정규직은 데이터가 없어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노동시간 단축은 성평등 조직문화와 맞물려 있다”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주 52시간제’를 반겼다.

낯선 현장에서의 새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까지 5년 넘게 근무했던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일을 시작할 때도 내부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단다. 그는 “당시 서울시에서 공무원들을 괴롭히려고 온 것 아니냐며 반발이 만만찮았다. 기존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저항할 수밖에 없기에 때론 싸우기도 하고 설득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 경험이 없었다면 센터장 지원을 망설였을 것”이라고 했다.

시민인권보호관 제도는 지자체 행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와 차별 사안을 독립적으로 조사해 시정권고할 의도로 서울시가 2012년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도입했다.

자문기구인 성평등위원회는 회사 안팎 위원으로 꾸려 합의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외연을 넓히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외부 위원을 어떻게 위촉할지가 핵심이다. 성평등 제도에 대한 조언과 방송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는 “요즘 여혐 확대는 남성들이 그동안 누린 권한이 침해당한다는 불만이 밑바닥에 깔렸다. 센터의 존재가 더불어 같이 살고 조직에 도움을 주려는 것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케이비에스 직원으로 임명받았으나 안팎의 지지 없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사회적 관심을 호소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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