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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폴 로머 뉴욕대 교수 "혁신의 場은 도시…도시개발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손 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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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인터뷰 ◆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62)가 8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뉴욕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강조한 핵심 키워드(keyword)는 기술 혁신, 지식 습득, 연결성, 도시화, 글로벌라이제이션 등이다. 이는 로머 교수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각자도생 시대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각자도생 시대 도래로 세계 경제성장에 필요한 지식 축적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그는 "미국에서 기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해 매우 실망스럽다"며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핵심은 상품 교역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머 교수는 또 "새로운 금융위기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지난 위기들을 통해 배운 실용적인 교훈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로머 교수는 도시화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했다. 효율적인 도시 개발 정책을 통해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이 지식과 경험을 빠르게 축적해 가며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도시 지역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다. 또 이들 도시는 다른 도시와 연결되며 더욱 성장하기 때문에 인프라스트럭처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로머 교수는 "도시는 많은 교육 기회가 열려 있어 사람들을 스마트하게 만든다"며 "도시 개발을 위한 공간(room)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과정에서 민간 섹터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는 환경 조성만 해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로머 교수는 기술 진보와 아이디어 축적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이른바 '내생적 성장(Endogenous Growth)' 이론으로 유명한 석학이다. 특히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강조해왔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한국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싱가포르 사례를 주의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도 소득 주도 성장을 시도해봤는데 절반의(mixed) 성공을 거뒀다. 모든 사람은 성장을 원하지만 변화는 싫어한다. 변화를 수용하면서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사람들은 소득이 늘어날수록 더 교육을 받게 되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마련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이 더 필요하고 누가 더 기술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한국 교육 시스템은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데) 좋은 성과를 냈다. 문제는 직장을 구한 이후 지속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화는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좋은 직장을 위해 대도시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집중으로 집값 상승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집값 상승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공간(room)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수록 공급을 늘리면 된다. 정부가 이를 직접 할 필요는 없다. 정부 역할은 (민간 섹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도록 놔두면 된다.

―도시화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시는 많은 교육 기회가 열려 있어 사람들을 스마트하게 만든다. 세계와 연결되는 데도 유리하다. 1811년 시작된 뉴욕 도시 개발은 아마 가장 성공적인 모델일 것이다. (각종 인프라스트럭처 등을 확충하는 등) 도시 개발 정책을 세우면서 이민자 수백만 명을 받아들였다.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도시 개발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은 이러한 도시화를 통한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 혁신을 촉진해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현재 미국에 기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해 매우 실망스럽다. 과거 미국은 화학공학(Chemical engineering)이라는 학문을 만드는 등 매우 진취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기술 혁신 정책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성'이다. 과거에 비해 일부 국가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 것은 바로 이러한 연결성 덕분이다. 보다 많은 사람이 서로 연결돼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함께 일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또 이러한 팀이 확대될수록 더 빠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단순히 상품 교역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상품은 충분히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핵심은 아이디어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라이제이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부인하는 움직임이 있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중요한 것이 과학이다. 과학은 '팩트(사실)'를 제공한다. 이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선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무관용 원칙)'를 보여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러한 팩트에 입각해 상황을 설명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 어려움이 많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쪽으로 결론 난 것은 이코노미스트들에게 큰 경고가 아닐 수 없다. 브렉시트가 미칠 영향에 대해 팩트에 근거해 설명해줘야 하는 게 이코노미스트들 역할이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에선 대학 교육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대학 학위를 받으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등 팩트에 입각해 상황을 설명하면 마음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한 가지 사례지만 바로 이런 식으로 팩트에 기반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새로운 금융위기가 있을 것이다. 다만 언제 어떤 형태로 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위기는 또 닥쳐올 것이고, 금융 쪽에서 나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난 위기들을 통해 배운 실용적인 교훈들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다.

―개방 등 최근 북한의 변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민자와 관련된 연구 결과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술적으로 보면 이민자들이 너무 많이 빠른 속도로 들어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민자들이 다른 법적 지위를 갖는 것은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소규모 이민자라면 상관없지만 그 규모가 1000만~2000만명에 달한다면 이에 대한 확실한 정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민이 이뤄진 이후에는 '백업 플랜'이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수상 소감은.

▷오늘 아침에 전화가 두 통 걸려 왔는데, 나는 그게 스팸 전화라고 생각해서 받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전화기를 보니 스웨덴 발신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월요일에 수상자 발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이 아니라 다음주 월요일인 줄 알았다. 무슨 일인지 발신자로 전화했더니 그때서야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혹시 나 외에 다른 수상자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국 예일대 교수)가 공동 수상했다고 답변을 받아 너무 기뻤다. 그는 훌륭한(terrific)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여자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

[뉴욕 = 장용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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