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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구하라 남자친구, '리벤지 포르노' 협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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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이 국민 법감정 따라가지 못해

제3자 유포 없고, 원해서 촬영했다면

“성폭법 적용 어렵다” 전문가 중론

여성계 “협박만으로도 성범죄로 처벌해야”

구하라씨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는 ‘리벤지 포르노 가해자’일까.

여론상으로는 최씨를 리벤지 포르노 가해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최OO과 이하 비슷한 리벤지포르노범 강력 징역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이글은 현재 22만 명 넘는 동의를 받아 청와대 공식 답변 조건(20만명)을 충족했다. 청원자는 “유포가 일어난 뒤 징역을 가는 것은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다”며 “지금 당장 최씨를 본보기로 리벤지 포르노를 소지하고 협박한 모든 가해자를 조사해 징역을 보내달라. 찍었다 지웠어도 징역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현행 성폭력처벌특례법(이하 성폭법)에는 ‘리벤지 포르노’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조항이 없다. 다만 성폭법 14조(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의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배포한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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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구하라씨와 그의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씨가 지난달 17일 강남경찰서에 출석한 당시의 모습.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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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타인의 신체’

성폭법 14조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영상이나 사진이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어야 한다.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영상으로 찍었다면 이를 제3자가 유포했다 하더라도 성폭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또 컴퓨터나 핸드폰 화면을 촬영한 것이라면, 그 내용이 성관계 영상이라도 성폭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최근 대법원은 내연남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컴퓨터 화면에 띄운 다음, 휴대전화로 촬영해 내연남의 부인에게 전송한 여성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성관계를 직접 촬영하면 리벤지 포르노지만, 성관계 영상을 재촬영하면 리벤지 포르노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셈이다.

② ‘의사에 반해’

성폭법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이 이뤄진 경우와 ▲합의하에 촬영했으나 사후 합의 없이 유포된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하라씨의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씨는 “성관계 영상은 구하라가 원해 찍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구씨는 이에 대해 반박 의견을 내지 않았다. “구씨가 원해서 찍은 것”이라는 최씨의 주장이 사실이고, 영상이 제3자에게 유포되지 않았다면 최씨가 성폭법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③ 유포

그렇다면 실제 유포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유포를 시도한 정황만으로 최씨를 처벌할 수는 없을까. 김영미 여성변호사협회 공보이사(변호사)는 “(최씨가 디스패치에 메일을 보낸 행위 등을) ‘유포 시도’라고 본다 하더라도 성폭법상 영상 유출에 대한 ‘예비 단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성폭법 15조인 유포미수죄를 적용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서 변호사는 “유포 미수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실제 유포 행위에 착수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최씨가 디스패치 이메일로 동영상을 보냈으나, 서버 오류로 반송된 경우라야 미수가 성립된다. 단순히 ‘구하라 동영상을 갖고 있다’는 말을 흘린 것만으론 미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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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범씨가 1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두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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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보면 “구씨가 원해서 촬영했으며, 제3자 유포는 없었다”는 최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씨에게 성폭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긴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다만 최씨가 구씨에게 동영상의 존재를 들먹인 점에 대해선 협박죄를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계는 성관계 영상을 도구로 협박하는 행위는 일반적인 협박죄가 아닌 성폭력 범죄로 중히 다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성폭법이 20년 전에 만들어져 유포의 양태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영상을 보유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유포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형법상 협박죄만 적용하면 국선변호사 조력과 전문가 상담 등 성범죄 피해자가 받는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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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최종범씨를 지칭해 "리벤지포르노범을 강력 처벌해달라"는 내용으로 올라온 청원은 22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사진 청와대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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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같은 폭행죄라도 주먹으로 때린 경우와 둔기로 때린 경우 죄질을 달리 보듯이, 협박의 도구가 ‘성관계 영상’이라면 가중처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입법부에서 이런 조항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봄직하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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