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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뉴스AS] 한겨레도 설믜를 설믜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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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믜씨를 설믜씨라고 부르지 못한건 한겨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혜와 총명함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 이름을 가진 대학생 김설??20)씨. 한글날을 맞아 민간 전산시스템이 ‘?脾?遮 글자를 인식하지 못해 본인인증도 하지 못하고, 통장도 제대로 개설하지 못하고, 심지어 장학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설?騁씬 안타까운 사연을 8일 기사로 썼습니다. (▶관련기사: ‘설믜를 설믜라 못 부르는’ 김설믜씨 “제 이름을 지켜주세요”)



문제는 기사를 승인한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한겨레 피시(PC) 버전에는 ‘김설믜’라는 이름이 제대로 적혔습니다. 그러나 모바일에는 ‘‘설를 설라 못 부르는’ 김설씨 “제 이름을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떴습니다. ‘믜’라는 단어가 아예 삭제된 것입니다.



한겨레

한겨레 기사 승인 직후 모바일 기사의 제목. 온라인 갈무리.


기사를 출고한 뒤, 기자가 속한 사회부 24시팀 텔레그램방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김설믜씨 기사 사진설명에 ‘김설믜’라고 안뜨고 ‘김설’ 제공으로 뜨네요.”(ㄱ 기자)



“앗. 우리 시스템도 안되나…검색에도 안걸린다. 디지털팀에서 여기저기 전화하고 있네.”(ㄴ기자)



“진짜 안타깝네요. 저희도 설믜를 설믜라 쓰지 못했습니다…”(ㄷ기자)



“조판에도 안찍히면 어쩌지? 그럼 디자이너한테 부탁해서 그려넣어야 할텐데.”(ㄱ기자)



“기사의 내용이 아닌, 기사 퍼블리싱 행위 자체가 문제제기였다. 기자가 한글날 기념으로 스스로 기사 제목을 폭파해버렸다…”(ㄴ기자)





한겨레

기사 승인 직후 네이버 기사의 제목. ‘설믜’라는 단어가 인식되지 않아 각종 물음표와 한자로 대신 표기되어 있다. 온라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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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로 전송된 기사의 제목은 더 심각했습니다.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설�貧� 설�牝� 부르지 못하는’ 김설�騁� “순우리말 이름 쓰게 해주세요” 본문에도 비슷한 한자들과 물음표가 난무했습니다. ‘가독성 없는’ 기사에 누리꾼들도 황당해했습니다. “김설네모네모??? 뭐라는 건지. 어떻게 읽는 거지?? 도대체 한글 맞는거여?? 못 읽겠는데??? 누가 읽어 주세요”(네이버 아이디 skc6****), “정작 기사에서도 그 이름을 정확하게 적지 못하고 있네요… 그래서 청원올린 그분… 정확한 성함이 무엇인가요?”(robi****). 해당 기사의 제목은 기사가 처음 나간 뒤 약 2시간40분 뒤인 오후 5시30분께 고쳐졌습니다. 기사 제목이 이상하다는 기자의 연락을 받은 설믜씨는 직접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본인입니다. 김설믜입니다. 여기서도 등록이 안되네요ㅎㅎ”



한겨레

9일자 한겨레 신문. ‘설믜’라는 단어가 입력되지 않아 디자이너가 직접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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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자체 분석 결과, 한겨레에서 2005년에 구축한 ‘온라인 기사 승인’(웹퍼블리싱) 시스템이 문제였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해당 시스템에서 ‘믜’라는 글자가 인식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글 완성형 코드를 사용하는 민간 전산시스템의 문제는 한겨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완성된 기사를 신문 지면에 얹는 조판 과정에서도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믜’라는 단어가 인식되지 않아, 신문 지면에 디자이너가 직접 ‘믜’라는 글자를 그려넣었습니다.



한겨레를 포함해 은행·통신사등 민간기업이 자체적으로 전산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 한 설믜씨의 고통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산업표준(KS)은 그 종류에 따라 담당하는 부처가 다릅니다. 8일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등에 두루 전화를 걸어 들은 답변은 하나였습니다. “한국산업표준은 말 그대로 민간기업에 참조하라는 개념이다. 한글 완성형 코드도 마찬가지다. 산업표준이긴 하지만, 정부에서 이를 바꾼다고 해서 민간 기업들이 바꾼 지침을 따라야 하는 강제력은 없다.”



한겨레

김설씨가 지난해 대학에 합격한 뒤 받은 합격통지서. 이름에 김설?라고 쓰여 있다. 김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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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믜씨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배우로 일하는 게 꿈인 설믜씨의 대학교 학생증에는 ‘설므ㅣ’(‘설므’에 알파벳 소문자 엘(l)을 함께 표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설믜씨가 나오는 공연을 홍보하는 포스터에는 한글 폰트가 ‘믜’를 인식하지 못해 그 글자만 어색한 명조체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기사가 나간 뒤 설믜씨에게 기사 링크를 문자로 보내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겨레에서도 피시(pc) 버전에는 ‘믜’가 제대로 뜨는데 모바일로는 안뜨네요. ㅠㅠ 지금 고치고 있다고 합니다.”(기자)



“아이고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김설믜)



“설믜씨의 고통을 간접체험하고 있습니다…ㅋㅋㅋ”(기자)



“ㅋㅋㅋㅋㅋㅋ 쉽지 않죠…”(김설믜)





정말 쉽지 않네요. 설믜씨는 언제쯤 마음 편하게 온라인에서 ‘본인인증’을 하고, 계좌를 만들고, 본인의 이름이 제대로 뜨는 기사를 볼 수 있을까요?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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