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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법도 性차별하나]⑥남자는 군인, 여자는 접대부? "둘 다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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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군인들이 야외훈련을 마치고 복귀 행군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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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헌법재판소는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에 대해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는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을 위해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것은 자의적이지 않다"고 했다. 또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곳은 이스라엘 등 극히 일부이고, 남성 중심인 군 조직에 여성이 군 복무를 하면 성범죄나 기강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평등권 침해가 아니라고 했다.

# 2011년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는 유흥종사자를 부녀자로만 정의한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 법원이 접대부를 고용할 수 없는 단란주점 사업자가 호스트바를 운영해도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해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법적으로 유흥종사자는 ‘부녀자’로 제한됐기 때문에 남성은 접대부가 아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다수 국무위원들은 시행령 개정이 호스트바 양성화를 부추길 수 있다며 개정안을 반대해 이는 통과되지 못했다.

‘군대는 남자만, 접대는 여자만.’ 우리 법의 현주소다. 남성에게만 군 복무 의무를 부여했고, 유흥업소 종사자는 여성으로 한정하고 있다.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 징병제’를 놓고 헌법상 평등권에 어긋나고 교육권과 직업의 자유 등 각종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학업과 직장 생활을 중단하면서 군 복무를 했는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과 비교해 ‘역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계는 유흥 종사자를 부녀자로 제한하는 것이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이를 규정한 식품위생법 시행령은 1962년 만들어졌다. 여성계는 여성을 술 시중하는 사람으로 보는 고정관념에서 법 규정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엘림(60)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남녀를 다르게 규정하는 법이 많았지만 그동안 법 개정 운동을 통해 대부분 평등하게 바뀌었다"며 "그럼에도 아직까지 남녀를 다르게 대우한 규정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병역법과 식품위생법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는 남녀 모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법"이라며 "남성만 군대를 가게 하는 것은 군대를 간 남성뿐만 아니라 군대를 못 가는 여성에게도 차별이 될 수 있고, 또 여성만 접대부가 되도록 하는 것은 유흥 종사자로 일하고자 하는 남성에게도 차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군대는 남성만 의무적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헌재가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헌재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하고 최적의 전투력을 위해 남성만이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는 전제부터 잘못됐다. 여성을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다. 또 군대에 남성만 있어야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입증되지도 않은 사실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군 장비가 현대화, 과학화되고 있어 헌재의 논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군에서 전투무기를 다루는 것이 유일한 역할을 아니기 때문에 전투 효율성을 이유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헌재는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면 시설 수리 등 막대한 재정부담이 들고, 군 기강이 해이해 질 것’이라는 지적도 했다.
"헌재가 남성 위주의 병영 시설을 수리해야 한다고 했지만, 여성의 군복무 형태는 다양하다. 반드시 전면 개선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바꾸는 게 필요하고, 맞는다면 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남녀차등 조치에 관해 비용 문제를 정당한 항변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성범죄 발생 등을 이유로 지적한 기강 해이 문제는 각종 성교육을 통해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다. 아울러 여성 군인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서 환경이 달라지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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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일부 나라에서만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지우는 것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또 여성들은 임신·출산으로 사회적 기여를 한다는 반박도 있다.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나라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10여 개국에 이른다. 남녀평등 선진국이라는 북유럽도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노르웨이는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도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며 2016년 여성 병역의무를 법으로 규정했다. 스웨덴도 2018년부터 같은 취지로 제도를 바꿨다. 또 여성의 출산 의무는 남성의 병역 의무와 결이 다르다. 여성의 임신·출산으로 인한 사회적 기여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이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법적 제재는 없다. 남성의 군복무는 강제다. 군복무 중 학업, 취업, 사회활동의 단절이 2~3년 정도로 길고, 군대에서 다치거나 사망할 가능성도 높다. 남성에게만 군복무를 의무적으로 이행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법개정이 필요하다."

-남성 징병제가 여성에게도 차별이라고 지적했는데.
"군대를 가고자 하는 여성의 군복무를 막기 때문에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도 볼 수 있다. 군대는 전쟁만을 대비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조건이면서, 직업 훈련의 장이 되며, 사회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성이 부사관, 장교 등 다른 방식으로 군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ROTC는 이화여대, 숙명여대만 유치하고 있다. 육군3사관학교 입학, 부사관 임관도 매우 제한적이다.
유럽재판소는 2000년 독일군이 ‘여성은 전투 군인이 될 수 없다’며 여성의 지원을 거부하자 이는 유럽공동체(EC)의 지침을 위배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고용, 직업훈련, 승진 등 근로조건에서 남녀를 차별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나라도 2011년 여자 장교를 예비군에서 배제한 법 조항이 남녀 차별이라며 개정한 적이 있다."

-여성계도 남성 징병제가 불합리하다고 보는 추세인가.
"군대로 남성에게만 상당한 혜택이 부여됐다며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여성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성 징병제는 ‘남성은 강하고, 여성은 약하다’는 전통적 역할분업관을 고착시키고, 취업·승진에서 남성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해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헌재가 2014년 합헌 결정을 내리자 남성들이 말을 잘 안 꺼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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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더불어 유흥종사자로 ‘여성’만을 규정한 것도 대표적인 성차별 법이라고 했다.
"식품위생법 시행령에서는 유흥종사자를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로 정의하고 있다. 접대부를 부녀자로 제한하는 것은 여성을 술 시중하는 사람으로 보는 고정관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남성은 유흥의 구매자로, 여성은 유흥의 대상자로 정형화시키는 전근대적이고 성차별적인 법령이다.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차별이라는 주장인가.
"그렇다. 법적으로는 처벌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수사기관과 언론은 여성이 남성 접대부와 술을 마시면 퇴폐풍조라고 비난하면서, 업소를 단속하고 보도했다. 남성이 여성 접대부와 술을 마시면 관대하게 묵인한 것과 상반된다. 제도권 안에 들어오지 못한 남성 접대부는 또 정식 고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보호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여성을 군대에 못 가게 하듯이, 남성이 유흥종사자가 되기 힘들도록 만들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법 개정이 무산된 뒤 왜 지금껏 논의가 안 된 것인가. 또 이걸 허용하면 남성 매춘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 건 아닌가.
"과거 법 개정이 부결되자 여성단체들이 시행령을 바꿔야 한다는 성명을 냈고,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도 개정안을 상정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지적한 대로 다른 관계 부처에서 유흥업을 조장한다든가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우려스럽다며 난색을 표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규정을 바꾼다고 해서 유흥종사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기본권과 관련된 별개의 문제다. 설사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법이 여성만을 접대부로 보는 것은 평등하지 못하다.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 또는 여성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성차별이다. 여성만을 성적 대상화하는 전근대적인 법임은 분명하므로 시급히 개정돼야 한다."

-‘여성 접대부’과 더불어 ‘남성 접대부’도 법 테두리에 넣자는 말은 ‘페미니스트’의 일반적인 주장인가, 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인가?
"일률적으로 어떻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여성단체들이 성명서를 내고, 정부 기관에서도 고치려고 하는 만큼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여성계 여론이 어떤지는 파악이 안 됐다.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식품위생법 시행령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법령상 유흥종사자를 ‘부녀자’로 정의한 부분을 ‘사람’으로 고치자는 목소리가 있고, 혹은 아예 유흥종사자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있다. 접대하는 사람을 불러다 술을 마시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문화다. ‘여자가 술을 따라야 맛이 난다’와 같은 생각은 일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만 찾을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부녀자로 한정해서 규정된 부분을 사람으로 고치는 것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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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엘림 방송통신대 교수는?
김엘림 교수는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면서 제주지역 대학장이다.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과 한국젠더법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올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여성인권과 남녀평등에 관한 학술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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