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북한도 예외가 없는 한류, 문재인 대통령 방북 이후 더 강해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남북정상회담 숙소로 사용한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 남측에서 가져온 10년생 모감주나무를 심은 뒤 북측 학생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북한-37] 최근 우리나라의 유명 K팝 그룹이 뉴욕에서 4만여 명의 팬들과 성황리에 콘서트를 마쳤다는 소식이 연일 화젯거리다. 이제 한류는 특정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데, 북한에서도 한류가 뜨겁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한에도 한류 열풍이 거세져 북한 당국이 진압에 나섰다. 지난달 25일경 국가보위성과 보위사령부는 각 도(都) 보위국과 군(郡) 보위부, 각 군단(軍團)들에 명령문을 하달했다. 명령문에는 지역별, 계층별, 연령별, 직업별로 주민들과 군인들, 개별적 간부들에 대한 동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한국산 제품을 사용하거나 혹은 사용을 권고하는 행위들을 철저히 단속하라고 돼 있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대통령의 '5월 1일 경기장' 연설에 대한 여론, 통일에 대한 주민들의 동향, 남한과 북한의 경제를 비교하는 행위, 이를 옆에서 수긍하거나 혹은 반대한 사람 등을 날짜와 장소까지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라고 돼 있다. 이 명령문에는 한국산 압력밥솥과 메모리, 휴대폰 등 구체적인 품목까지 명시돼 있다. 일명 '비사회주의 그루빠'로도 불리는 단속조직은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방침이나 명령문 등이 하달되면 단속 활동의 강도가 더욱 높아진다. 이번에 하달된 명령문은 비사회주의 행위에 대한 지적이 기존에 비해 매우 구체적이다.

북한에 대대적으로 한류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방북 이후다. 남북 관계의 핑크빛 기류를 틈타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했다는 드라마와 영화가 버젓이 유통됐다. 동네 여러 가정이 한 집에 모여 CD플레이어로 한국 영상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했고 단속도 느슨했다. 북에서 받은 교육과 달리 영상 속 남한 사람들은 너무나 자유로웠고 풍요로웠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애정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팬심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북 관계가 나빠지면서 단속이 강화됐고 처벌도 엄격해졌다. 그러나 남한 드라마를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문화의 힘은 대단했다. 사상교육을 통해 막연히 갖고 있었던 남한에 대한 경계심은 동경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북한 주민들의 대량 탈북은 배고픔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는 한류가 큰 영향을 미쳤다. 체제 반대, 독재정권에 대한 환멸 등 거창한 사상적 이유보다는 머리를 길러 다양한 컬러로 염색을 한번 해보고, 미니스커트나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북한에 또다시 한류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연도 환영에 나선 평양 시민들에게 보여준 대통령의 '폴더 인사'는 북한 주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갔다고 한다. 당시 행사에는 평양시 동·인민반 단위 주부들과 대학생들이 대거 동원됐다. 허리 굽혀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국가지도자의 모습을 본 그들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참 겸손하다" "한국의 경제 수준이 높다더니 대통령도 여유가 있다" 등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칭송으로까지 이어졌고, 수요가 많다 보니 가격도 비싸졌다. 주부들 사이에 단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제품은 '쿠쿠' 전기밥솥이고, 여유깨나 있는 대학생이라면 '삼성' 노트북을 가지는 것이 유행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용해 본 사람은 좋은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10년 전만 해도 그저 한국산, 일본산, 중국산 등으로 분류하던 물건들이 점차 특정 브랜드로 가치가 정해지고 구매되는 북한의 소비 트렌드도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강한 것은 일부를 얻지만 부드러운 것은 전부를 얻는다고 했다. 어쩌면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보다는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북한 내부의 빠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한에 대한 선망과 동경, 자유와 인권에 대한 비교를 통해 북한 주민의 인식 변화를 이끄는 데 한류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혜원 통신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