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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만물상] '방산 비리 무죄(無罪)율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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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海士) 출신 대령 한 사람은 올해 말 전역을 앞뒀다. 그러나 그는 2015년 해상작전 헬기 도입 비리 혐의로 구속돼 30년 넘는 군 생활에서 마지막 3년을 법정 투쟁에 쏟아야 했다. 하급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풀려났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때까지 법원 나올 일 빼고는 시골 농가에 숨어 살다시피 했다. 지인들은 "그가 정신적인 충격은 물론 변호사 비용 대느라 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해군 장교단은 지난 정부 때 방산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돼 '초상집'처럼 됐다. 2014년 검찰을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단이 출범해 이른바 '8대 방산 비리'를 파헤치는 상황이었다. 서울구치소엔 한때 20명 넘는 현역·예비역 해군 장교가 갇혀 있었다. 당시 구치소 면회실에선 수감된 장교의 아내들이 서로 부여잡고 우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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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직 해군 참모총장들도 구속됐다. 황기철·최윤희 두 사람은 각각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으로 있을 때 통영함·소해함 납품 비리, 해상작전 헬기 도입 비리 혐의로 몰려 있었다. 결국 둘은 떠밀리 듯 전역한 뒤 구속까지 됐지만 무죄 선고를 받았다. 황 전 총장은 무죄가 확정됐고, 최 전 총장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됐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황 전 총장은 무죄 선고 뒤 "나는 국가에서 버려진 장수"라고 했다.

▶어제 국회 국방위원장이 주재한 한 토론회에서 방위산업 비리 합수단이 구속 기소한 피고인의 무죄 선고율이 50%에 이른다는 발표가 나왔다. 8대 방산 비리 수사로 구속된 34명 중 1심 무죄는 11명, 2심 무죄는 17명이었다. 일반 형사재판에서 구속 후 무죄율이 2~4% 선인데, 그보다 20배 높은 수치로 담당 검사 전부가 인권 유린의 책임을 져야 한다.

▶방위산업은 내용이 전문적이지만 언론의 섣부른 기사와 대통령의 호통, 검찰의 '무조건 구속' 수사 앞에 여러 측면의 복잡한 설명이 통하기는 어려웠다. 검찰은 지난해 한국항공우주산업을 방산 비리 혐의로 수사하다 안 되니 분식 회계 혐의로 트는 황당한 일까지 벌였다. 그러나 납품 원가 부풀리기 혐의로 기소된 담당 임원에겐 정작 주요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런 수사로 군인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고 멀쩡한 기업은 적폐 기업으로 몰려 흔들리고 있다. 이 군인들과 기업은 어디에 그 엄청난 피해를 하소연해야 하나. 방산 비리는 반드시 막아야 하지만 옥석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 매도는 안 된다.

[최경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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