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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김철중의 생로병사] 고령자 주택 몰려 있는 日 '노인 홈' 타운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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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입주자 위해 턱 없애고 모든 문은 슬라이딩 도어 방식

간호사 상주 요양 시설부터 아파트형 양로원까지 종류도 다양

高齡 인구 15% 이르는 한국도 방문 진료·가정 간호 등 서둘러야

조선일보

도쿄=의학전문기자


도쿄 시내에서 전철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후지가오카(藤が丘) 지역. 도쿄 남쪽 요코하마시(市)에 속한 곳으로, 일본의 전형적인 중산층 동네다. 여기에 노인 홈(home) 40여 개가 몰려 있다. 노인 홈은 고령자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아파트와 호텔을 섞어 놓은 형태의 주택을 말한다. 보통 3~5층 한 노인 홈에 120가구가 산다.

후지가오카 전철역을 중심으로 변방 1㎞ 안에 줄잡아 75세 이상 고령자 6000여 명이 노인 홈에서 지내고 있다. 여기를 '노인 홈의 긴자(銀座·도쿄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부르는 이유다. 전철역 옆에는 대학병원이 있고, 곳곳에 내과 클리닉 간판이 눈에 띈다.

노인 홈 내부로 들어가보면, 초고령사회 노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 수 있다. 거주자들은 대부분 80대다. 8할이 혼자 산다. 1층 로비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고, 한쪽 서재에서 신문을 본다. 다목적룸에서는 체조와 댄스 교실이 열린다. 그 옆 미니 영화관, 이번 주는 1970년대 히트 영화 '남자는 괴로워'가 방영되고, 다음 주는 할리우드 영화 라라랜드다. 서도(書道) 서클이 있고, 가라오케 타임이 있고, 문화특강이 있다. 그렇기에 노인 홈 회사는 건설사와 라이프 디자인 회사를 같이 운영한다.

식당에서는 메뉴와 칼로리가 적힌 식단표를 보고 선택해 먹는다. 대개 아침은 각자 방에서 해결하고, 점심 때 반은 나가서 먹고, 저녁 때 식당으로 많이 모인다. 먹을 때마다 ID 카드를 찍어 먹은 만큼 식비를 정산한다. 방에는 화장실·현관·침대 옆 곳곳에 직원 호출 버튼이 있다. 낙상하거나 쓰러졌을 때 누를 수 있게 버튼을 무릎 높이에 뒀다. 직원은 24시간 대기한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폰으로 직원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세면기건 변기건 물을 12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직원이 방에 가본다. 45분간 물이 계속 흘러도 알람이 울린다. 공동 목욕탕에 들어갈 때 ID 카드로 '입장'을 찍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퇴장이 안 찍히면 직원이 달려온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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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현관으로 들어가고 거실을 지나 베란다까지 가는데 턱이 하나도 없다. 휠체어 입주자를 위함이다. 현관에서 방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밖을 내다보는 렌즈 구멍도 서서 보는 것과 앉아서 보는 것 두 개가 있다. 모든 문은 살짝만 밀어도 열리는 슬라이딩 도어다. 쥐는 힘이 약한 노인은 손잡이 문 사용이 힘들다. 고령자는 신발을 신고 벗을 때 잘 넘어지니까, 현관에 벽 판을 내리면 접이형 의자가 되는 장치도 해놨다.

엄청 고급 맨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중상급이 이 정도다. 약 44㎡(13.3평) 방을 75세에 입주하면, 90세까지 15년 거주 보증금으로 약 5억원을 낸다. 매달 월세는 우리 돈으로 150만원 정도다. 이는 중산층 노인들의 자기 주택 보유 현황과 연금 수준, 의학적 평가에 맞춰 설계돼 있다.

일본서 고령자 6000명을 20년간 추적하여 어떻게 허약해지는지 알아본 유명한 연구가 있다. 남자 대다수(70%)는 75세쯤부터 노쇠가 시작돼 15년이 지난 90세에는 혼자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친다. 반면에 여자 10명 중 9명은 70세쯤부터 서서히 노쇠가 시작돼 20년간 천천히 쇠약해진다. 90세가 되어도 남자처럼 아주 바닥을 치진 않는다. 남녀 공히 10%는 60대 중반부터 나빠져서 70대 초반에 요양원 신세를 진다.

일본은 이 패턴에 따라 노쇠가 시작되는 70대 중반부터는 고령·장애 친화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거주 환경을 바꿔 왔다. 간호사가 상주하는 병원과 집 중간 형태인 특별 요양 시설, 아파트형 양로원 등 다양하다. 지자체가 주택을 고령 친화로 개조하는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노인 홈이 인기를 끌며 도쿄 도심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고령 인구 15%에 들어선 우리는 이제 사는 곳과 살 집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살던 집에서 삶을 마무리 지어야 끝이 좋다. 그래야 개인은 행복하고, 국가는 부담이 준다. 방문 진료, 가정 간호도 그래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아파트, 주택 형태, 병원 중심 의료 인프라로는 끝까지 집에 남아서 삶을 마무리 짓기 어렵다. 앞으로 7년 후인 2025년이 오면, 노인들이 총인구의 21%가 된다. 고령화 15년 선배 일본을 보니, 고령 친화 주택, 거주 형태의 다변화, 집으로 가는 의료,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도쿄=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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