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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사설] 정쟁 늪에 빠진 여야, ‘식물 헌재’ 만들려고 작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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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벌써 3주째 이어지는 ‘헌재 유고’ 사태다. 사건 심리를 위한 재판관 정족수(7인)를 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은 9명이 정원인데 지난달 5명이 퇴임한 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석태·이은애 재판관만 충원됐다.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3명의 선출을 둘러싸고 여야 간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회 표결이 미뤄진 탓이다. 유남석 신임 헌재 소장은 “하루속히 헌재가 본연의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게 국회 표결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헌법재판관이 퇴임을 앞두고 있으면 청문 절차 등을 위해 최소한 퇴임 1개월 전 후임자를 지명 또는 선출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월 말 김기영 후보자를 추천했고, 바른미래당은 지난달 3일 이영진 후보자를,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10일에야 이종석 후보자를 추천했다. 국회는 지난달 3명의 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실시했지만 본회의에 선출안을 상정하지 못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민주당이 추천한 김 후보자는 자녀 초등학교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 사실을 인정했고, 한국당이 추천한 이 후보자도 주택청약예금 가입 목적으로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후보자들의 이런 문제를 사전에 검증하지 못한 정당들이 반성은커녕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국회의 표결이 지연되면서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하는 전원재판부는 정족수 미달로 인해 평의·변론·선고 등 심판 기능이 중단됐다. 헌법소원 심판을 사전 심사하는 지정재판부도 재판관 3명씩 3개로 운영돼야 하는데, 6명의 재판관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이런 탓에 낙태죄 위헌 여부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심리가 늦어지고 있다.

헌재는 헌법 가치의 최후 수호자로 위헌법률 심판·탄핵 심판·헌법소원 심판 등의 중요한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헌법기관이다. 여기서 내려지는 결정은 국가 운영이나 국민의 기본권 및 삶과 직결된다. 단 하루의 공백이 생겨서도 안 되는 헌법기관이 장기 공백 사태에 처한 것은 국회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툭하면 정쟁으로 ‘식물 국회’를 일삼던 국회가 이번엔 ‘식물 헌재’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여야는 조속히 재판관 후보 인준안을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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