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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1년간 쫓던 불법도박 자금, 마늘밭에서 나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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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 11억원, 불법도박 자금으로 밝혀낸 ‘노세호 경정’
"속 쓰리고 마음 아파… 아직도 마늘밭에는 안 가봐"
"인터넷 도박은 절대 돈 딸 수 없어… 처벌 강화해야"

마늘밭 110억원이 인터넷 불법도박사이트에서 벌어들인 불법자금으로 드러나는 데는 노세호(43·경정)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2년 전인 2009년 사이버수사대장일 때 이씨 형제의 불법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을 일망타진한 주인공이다. 동생 이씨를 비롯해 조직원 여러 명을 구속시켰지만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사라졌다. 노 대장은 "범죄수익금을 추적하던 중 마늘밭에서 돈다발이 나왔다는 소식에 ‘아. 땅속에 있었구나’ 하며 무릎을 탁 쳤다"고 했다.

조선일보

지난 20일 오후 충남 내포신도시에서 만난 노세호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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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충남 내포신도시 충남경찰청에서 노 대장을 만났다. 그의 기억 속에 ‘마늘밭 사건’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포기하지 않고 범죄 수익금을 찾아 다녔어요. 오랜 시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지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마늘밭에서 (돈이) 나온 겁니다. 속이 쓰리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그 마늘밭에는 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노 대장은 ‘사이버수사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터넷 범죄수사 경험이 많다. 작년 12월에는 필리핀에서 한국인 보이스피싱 조직원 47명을 전세기로 데려온 것도 그의 작품이다. 마늘밭 사건의 뒷이야기와 함께 그에게서 ‘사이버 범죄’의 실상을 들어봤다.

Q. 마늘밭 돈다발의 주인, 이씨 형제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는 어떻게 시작됐나.
"이씨 형제가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는 당시 최대 규모의 도박사이트였다. 회원수도 많고, 오가는 도박자금도 컸다. 도박사이트 수사를 위해서는 일단 실제로 도박을 해봐야 했다. 사이트에 가입해 한 번에 5만원, 10만원씩 입금하고 실제로 도박을 한 것이다. 아마 도박으로 50만원쯤 썼던 것 같다. 물론 돈을 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는 이들 조직에 서서히 접근했다. 몇 달간 내사를 벌여 이씨 형제가 사이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수사가 시작되자 형은 해외로 도주했지만 동생은 검거했다. 이후 하부 조직원들을 하나 둘 잡아들였다. 그러자 이씨 형제의 도박조직의 실체가 드러났다."

Q.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범죄여서 검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말 어려운 수사다. 불법도박사이트는 적발해 폐쇄하더라도 하위 조직원들의 네트워크가 살아 있기 때문에 곧장 다른 사이트로 개설한다. 서버도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으로 옮겨버린다. 수색해야 할 계좌만 수백 개에 이르고, 통신내역 수사, 자금 추적 등 하나도 만만한 게 없다. 실제 용의자 검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2008년에도 큰 도박사이트 한 곳을 털었다. 범죄 수익금만 150억원에 달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수사 결과를 좀 부풀린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다. 마늘밭 사건은 인터넷 불법 도박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Q. 이씨 형제 사건에서 사라진 도박자금 추적에 왜 그렇게 매달렸는지 궁금하다.
"수백 개 계좌를 뒤졌다. 그러나 이들 조직이 빼돌리지 못하고 계좌에 남아있는 돈은 3억9000만원 뿐이었다. 수사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돈을 빼내 간 것이었다. 그나마 지급정지를 시키는 바람에 그거라도 찾을 수 있었다. 들락날락한 돈이 수백억 원인데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그때부터 사라진 돈을 찾아 나섰다.

하루라도 빨리 계좌추적을 하려고 은행 직원들에게 피자를 돌려가면서 거래내역을 받아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이씨 형제 조직원들은 현금을 빼내 개인사무실 내 금고, 친척집 침대 밑, 은행 대여금고 등 곳곳에 숨겼다. 하지만 땅 속에서 발견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Q. 이씨 형제는 1년6개월만에 무려 170억원을 벌었다고 하는데… 점 1000원짜리 고스톱으로 이게 가능한가.
"1점당 1000원이어도, 딴 돈에 수수료로 10~20%씩을 계속 떼다 보면 그렇게 된다. 인터넷에서는 게임 회전이 엄청 빠르다. 한 시간에 수백 판이 돌아간다. 몇 번 따는 것에 재미 들려 계속 하다 보면 모두가 돈을 다 잃는 구조다. 실제로 고스톱을 쳐 보면 결국 돈을 버는 건 옆에 있는 ‘고리’지 않느냐. 그것과 비슷하다."

‘고리’는 도박판에서 실제 도박엔 참여하지 않고 옆에서 술과 안주를 사오는 등 잔심부름을 하면서 돈을 딴 사람에게 도박장 이용료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실제 도박장에서는 현금 대신 사용하는 칩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도박장을 개설한 개장자를 부르는 은어다.

Q. 인터넷 불법도박은 청소년들에게도 많이 퍼져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청소년들이 호기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도박은 범죄’라는 예방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듯이, 도박도 범죄이고, 한번 빠지면 패가망신한다는 예방 교육이 절실하다. 특히 인터넷 불법도박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피해나 범죄수익 규모 등을 고려해 처벌을 현재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

[손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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