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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김명수 "문제의 출발점인 법원 행정처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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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사무국 등 3곳으로 재편, 행정은 외부인사에 맡길 것"

김명수 대법원장이 20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예산·사법정책을 총괄해왔던 조직이다. 그러나 행정처가 그동안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에 휩싸이자 아예 조직을 없애겠다고 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대신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해 사법행정권을 맡기겠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 내부 온라인망에 올린 글을 통해 "오늘날 법원은 전대미문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며 "여러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행정처를 법원사무처와 대법원 사무국으로 분리·재편하고, 사법행정에 관한 (결정) 권한은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가칭)에 부여하겠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행정처를 세 기관으로 쪼개겠다는 의미다. 대법원 재판을 지원하는 재판 사무국은 현재 행정처 안에 있다. 먼저 이를 떼어내 대법원 직속 부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행정처가 기존에 해오던 인사·행정 등의 실무는 법원사무처가 맡되,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은 외부 인사가 다수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에서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그러나 사법행정회의 구성과 외부 인사 참여 비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법원 내부에선 사법행정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사법행정회의에 주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회의에 참여하게 될 외부 인사들의 입김에 법원이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애초 대법원 산하에 법원행정처를 둔 목적이 사법부 독립을 위한 것이었는데 외부 인사들이 법원 행정에 관여하게 되면 오히려 사법부 독립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또 내년 정기인사 때부터 각급 법원의 법원장을 임명할 때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내년부터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고법부장 승진제는 그동안 법원 관료화의 한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법관들이 승진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그는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가 "궁극적으로 모든 법관이 동일 직급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선 "승진 제도가 없어지면 재판의 질(質)이 확연히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한 지방법원장은 "성실히 일한 판사나 그렇지 않은 판사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누가 열심히 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법원장 임명 때 소속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사실상의 '법원장 호선(互選)제'를 두고도 "법원 내 특정 세력에 속한 판사가 법원장이 될 가능성이 커 법원 정치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구상이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행정처 폐지나 사법행정회의 신설 등 상당수가 법을 바꿔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장 선언만 있지 아직까지 구체적인 안(案)은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회에서 논란이 될 경우 도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1949년 9월 26일 법원조직법이 공포되면서 설립됐다. 애초 이 조직을 둔 목적은 사법행정을 행정부에서 떼어내 사법의 독립을 지키자는 취지였다. 대법관이 처장, 법원장급이 차장을 맡았다. 실무를 맡는 행정처 심의관(평판사) 등에는 엘리트 판사들이 주로 배치됐다.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는 판사는 같은 기수에서 10%도 안 돼 발탁 인사로 여겨졌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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