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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신약 후보 고를 때 도박하듯 피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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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30번째 신약 성공 CJ헬스케어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케이캡정

후보 물질 수백 개 놓고 한달 회의

개발에 9년 … 세계 시장규모 28조원

중앙일보

CJ헬스케어는 국내 서른 번째 신약인 케이캡정을 발표했다. 개발을 주도한 CJ헬스케어 신약 개발팀을 서울 중구 을지로 사옥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김봉태 임상의학센터 팀장, 박지혜 이노베이션센터 팀장, 송근석 임상개발실장, 박혜정 등록팀장, 고동현 신약센터 팀장, 남지연 메디컬어페어팀 부장.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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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년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질주하는 것 같은 시간이었어요. 신약 성공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 딱 그 심정이었어요.”

송근석 CJ헬스케어 임상개발실장(상무)은 신약 개발 과정을 이렇게 압축한다. CJ헬스케어는 지난달 초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케이캡정의 신약 허가를 받았다. 한국 제약 120년 역사에서 서른 번째 신약이었다. 국내 제약 역사는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이 문을 연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국내 신약 1호는 100년이 더 지난 1999년에야 나왔다.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프라주’다. 이후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과 출시가 경쟁처럼 이어졌다.

CJ헬스케어 신약 개발팀을 만나 9년간의 개발 과정을 들어봤다. 송 실장과 남지연 메디컬어페어팀 부장, 박지혜 이노베이션센터 팀장, 박혜정 등록팀장, 고동현 신약센터 팀장, 김봉태 임상의학센터 팀장이다.

케이캡정 개발에 9년이 걸렸다.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송 실장은 “신약 후보 물질 선정이 가장 피말리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처럼 신약 개발은 도박과 비슷하다. 수십 혹은 수백 개의 후보 물질을 찾고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물질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고동현 팀장은 “신약을 선정하는 기간에는 후보 물질마다 장·단점을 만들어 놓고 한 달 넘게 매일같이 회의를 열었다”며 “딱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그 때가 부담감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케이캡정은 후보 물질 선정과 임상 시험에 8년이 걸렸다. 나머지 1년은 식약처 허가를 받는 데 썼다. 임상이 끝나야 후보 물질의 약효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 팀장은 “이번 신약은 허가 기간 포함해 9년이 걸렸는데 이것도 빠른 것”이라며 “보통은 15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국내 임상 시험은 대학병원을 포함해 정부가 지정한 3차 의료기관에서만 진행할 수 있다. 남지연 부장은 “위궤양 환자 대부분이 동네 의원인 1차 의료 기관에서 진료를 보기 때문에 종합병원에서 위궤양 환자 2000명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든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넘어서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CJ헬스케어는 중국 내 독자 판매를 추진하다 최근 중국 기업에 신약 판권을 넘겼다. 박지혜 팀장은 “중국 시장 자체 진출을 목표로 2년 넘게 준비했으나 중국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고 질질 끌었다”며 “러신(Luoxin)이란 중국 제약사에 1000억원을 받고 판권을 넘겼다”고 말했다. CJ헬스케어와 러신은 중국에서 임상 1상을 끝내고 3상 시험을 위한 환자를 모집하는 중이다.

보통 ‘신물이 넘어온다’고 표현하는 위산 과다 분비는 위가 산 분비를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누구나 흔하게 겪는 질병이기에 그만큼 시장 규모도 큰 편이다. 위산을 억제하는 약물의 세계 시장 규모는 28조원에 달한다. 국내 시장은 4700억원 수준이다. 최근 들어 위산 과다를 억제하는 방식을 바꾼 신약이 속속 등장하면서 시장 판도가 변화하는 중이다.

김봉태 팀장은 “몸속 위벽에는 위산을 분비하는 프로톤 펌프라는 게 있는데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은 이 펌프에 달린 수도꼭지를 잠그는 데만 치중해 소화불량 등 부작용이 많았다”며 “케이캡정은 위산 내 상태에 따라 수도꼭지를 잠갔다가 필요하면 다시 풀 수 있어 부작용이 적다”고 말했다.

케이캡정은 이르면 내년 2월부터 판매될 예정이다. 일본 1위 제약사 다케다가 만든 다케캡도 국내 허가를 앞두고 있다. 박혜정 팀장은 “다케캡은 작동 기전은 비슷하지만 구조는 케이캡과 완전히 다르다”며 “다케캡은 일본에서만 6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조만간 한국 시장을 놓고 위궤양 한·일전이 치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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