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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세상 읽기] 지금 당장 이 긴축을 끝내라 / 이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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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2012년 미국의 거시경제학자 크루그먼은 그의 책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에서 보수파가 주장하는 재정긴축이 불황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역설했다. 2018년 한국은 내수 침체와 경기 둔화가 우려되고 취업자 증가는 부진하며 대외적인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거시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적자를 감수하고 돈을 더 써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재정정책은 어떤가? 2018년 정부 예산은 작년에 비해 본예산 기준으로 7.1% 증가했고 추경예산끼리 비교하면 5.5% 증가하여 명목 지디피(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재정정책이 확장적인지 평가하는 데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의 수입과 지출을 비교하는 재정수지인데 2015년 이후 흑자가 증가하여 긴축적으로 되었다. 국제기구들이 사용하는, 경기변동효과를 제거한 기초재정수지를 보아도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긴축적이었고 최근 긴축 성향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재정수지가 적자이고 나랏빚이 늘어나고 있다고 걱정인데 어찌 된 일일까. 적자인 재정수지는 관리재정수지인데, 이는 실제 정부 부문으로 돈이 들어오고 나간 수지인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수지를 빼고 계산한다. 한국의 연금은 현재 사람들이 지불하는 보험료가 받는 수입보다 크기 때문에 흑자다. 따라서 2017년 통합재정수지는 GDP 대비 1.4% 흑자지만 관리재정수지는 1.1% 적자였다. 정부는 미래의 부양 부담을 고려하여 관리재정수지를 재정의 기준으로 삼지만, 그로 인해 현실의 재정에서는 일종의 긴축편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관리재정수지를 GDP 대비 1.7% 적자로 전망하는데, 그것도 2014년과 2015년에 비해 적은 수준이다. 게다가 지난 6월까지 세금이 전망보다 19조3천억원 더 걷혀서 1년 목표치의 58.6%를 달성했으니 적자폭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작년에도 초과세수가 14조원이 넘어 전망치에 비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많이 줄었고 통합재정수지 흑자는 늘어났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도 결과적으로 긴축재정이 나타났으니, 정부는 무늬만 케인스주의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국민의 살림살이가 어렵다면 정부는 곳간을 활짝 열어야 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정부는 통합재정수지의 적자를 감수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대응한 바 있다. 내년 정부는 단기적으로 통합재정수지의 적자와 재정지출 10% 이상의 증가를 목표로 획기적인 재정확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와 여러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교육과 혁신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공공투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나랏빚이 늘지 않느냐고? 현재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약 38.2%인데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GDP의 2%가 되어도 성장률이 유지된다면 높아지지 않는다. 적극적인 재정 확장이 불평등을 개선하고 총수요를 확충하며 인구변화에 대응하여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경제가 정말 어렵다면 단기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의 상승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앞으로 공평한 증세를 통해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기반도 닦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 정부가 재정 확장과 증세 모두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깨달음은 불평등과 긴축이 성장에 나쁘다는 것이었다. 이제 한국 정부에 ‘지금 당장 이 긴축을 끝내라’고 말해야 할 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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