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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왜냐면] 정말 “어머니 같은 정부”라면 / 지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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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탈국가주의’ 또는 ‘자율주의’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마 두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나는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자유한국당이 뭔가 활로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 다른 하나는 국가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오랜 불신을 환기한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버리고 죽이고 정치인과 관료가 잇속만 챙기는 무책임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에 대한 의혹이 기본으로 깔린 사회에서 국가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병준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건드린 셈이다.

그의 국가론의 핵심은 국가가 “시장과 공동체가 할 수 없는 일”에 “보충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따뜻해 보인다. ‘작은 정부’는커녕 사회정책과 재정수입을 중시한다. 국가의 능력과 책임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그의 국가는 책임과 권력을 사유화하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보다 관리하는 데 그친다.

첫째, 김병준은 국가가 결코 보충물에 그칠 수 없음을 간과한다. 김병준이 주장하는 국민중심 성장모델은 누가 만들까? 결국 국가다. 그의 주장에서도 국가가 보충적 역할 이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시장과 공동체를 포함해 사회 전체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지고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즉 국가는 시장과 공동체에 대해 ‘보충적’ 역할뿐 아니라 그 구조를 설계하는 ‘근본적’ 역할을 한다. 민주국가가 그 역할을 보충에 한정하고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때 그 역할과 권한은 엉뚱한 이들에게 넘어간다. 바로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 특수 이익집단들과 국가 내에서 그들과 연합한 이들이다. 이는 권력의 사유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할 뿐이다.

둘째, 김병준은 시장과 공동체에 근본적으로 내재하는 불균형을 간과한다. 그는 “경영자와 사용자, 소비자와 생산자, 투자자와 채권자가 상호 견제하는 자율적 통제 메커니즘”에 근거한 국민중심 성장모델을 말한다. 그런 사회란 어떤 것일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패러디해보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국민은 다른 국민보다 더 평등하다.’ 영국의 사상가 R. H. 토니는 “큰 물고기의 자유는 작은 물고기에게는 죽음”이라 했다. 국민과 시장 참여자 사이의 권력 불균형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자율적 통제란 그런 것이다.

셋째, 김병준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고 ‘관리’하려 한다. 그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하되, 실패하고 돌아온 자녀는 따뜻하게 보듬”는 “어머니 같은 정부”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표현부터 잘못된 것이다. 어느 어머니도 아이들을 다칠 수 있는 위험한 곳에서 놀게 두지 않는다. 정말 “어머니 같은 정부”라면 위험한 시장의 구조를 바꿀 것이다. 하지만 김병준의 국가는 불균형한 구조의 근본 개혁을 추구하지 않는다. 단지 부정적 결과에 보충적으로 개입할 뿐이다. 그의 국가론은 우승열패를 당연시하는 신자유주의의 보충물일 뿐이다.

김병준의 엉성한 문제제기에 대응해 이제 민주진보진영은 국가가 왜 시장에 개입해야 하고, 어떻게 불평등과 분배, 고용과 복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이론과 전략을 제시하고 능력을 검증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국가는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한 국가는 어떻게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고 성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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