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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朝鮮칼럼 The Column] 대기업 끌어안아야 혁신 성장 제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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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혁신적 기술 개발 가로막는 장애물 수두룩… 벤처·中企로는 돌파 못해

美·中도 공룡기업 의존해 유망 스타트업 키우고 R&D 투자와 사업화해

조선일보

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기를 '공약 1호'로 내세우고 이 정부가 출범할 때, '닥치고 일자리 창출'을 주장해 온 필자는 기대가 컸다. 1년 넘게 지난 지금 '소득 주도 성장' 만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것이 판명됐고 경제부총리에게 '혁신 성장'의 부진을 질책하며 여기서 성과를 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어떤 것이 혁신 성장인지는 지난 정부의 창조 경제만큼이나 확실치 않지만 청년 창업과 벤처 창업, 그리고 혁신적 기술 개발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창업 현실을 보면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이미 지독한 공급 과잉, 과당 경쟁에 직면해 있는 음식·소매·운수업 등 영세 자영업 창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받은 창업자는 일단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체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한, 기존 사업자 중 일부가 문을 닫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게다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창업자의 70~80%가 5년 안에 폐업한다고 한다. 공급 과잉 상태에 있는 자영업종 창업을 정부가 '지원'까지 해야 할지 의문인 것이다.

물론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창업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창업이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너무 취약하다.

현재 미국이나 중국에서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다고 하는 창조적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조차 대부분 애플, 구글과 아마존,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에 의존하고 있다.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후, 먼저 성공한 이 공룡 기업들에 그 기술이나 사업을 파는 것이 오늘날 성공 창업의 전형(典型)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먼저 성공한 공룡 기업'이 거의 없고, 그 역할을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대기업은 공정거래법 규제에 묶여 있다. 그래서 필자는 "성공한 스타트업이나 벤처는 한국이 아니라 실리콘 밸리에 가서 팔고, 한국 대기업이 이런 기업을 사고 싶을 때는 미국이나 중국에서 사라"고 말한다.

창의력을 조직적으로 억누르는 우리 교육의 획일성과, 제도를 만들 때 당사자에게 융통성과 선택 여지를 남겨 주려고 하지 않는 우리 법 체계의 경직성이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제 막 시행한 주(週) 52시간 노동만 해도 혁신 성장을 이루어내야 할 신생 기업들에는 엄청난 장애 요인이다. 경직적인 노동법 규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혁신 성장의 순항을 기대하기 어렵다.

규제 혁파를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혁신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드론(무인 비행기)·빅데이터·인공지능(AI)·원격진료·핀테크 등이 모두 이미 중국에 뒤지고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이 정부만 탓하는 것이 아니다. 전(前) 정부들도 다 못했다. 과거 정부들처럼 규제 혁파를 못 하면 그들처럼 일자리 창출에 실패할 것이라는 말이다.

대기업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가지게 될까 봐 규제 혁파를 못한다는 것은 자해(自害) 행위나 다름없다. 중소기업은 역량이 부족해 못 하고, 대기업은 규제 때문에 못 하면 누가 혁신 성장을 해 내겠는가? 지금이라도 중국처럼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혁신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공룡 기업에 팔아 넘기는 수준을 넘는 획기적 신기술이나 신제품의 개발, 또는 경쟁력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차원의 큰 혁신을 이루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천문학적 금액의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하다. 연구·개발에 성공해도 실제 사업화 과정에서 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과장하자면 성공할 때까지 퍼부을 밑천이 있으면 성공하고, 중간에 돈이 떨어지면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이것이 요즘 미국과 중국의 공룡 기업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들만으로 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기업도 동원해야 하고, 정부도 나서는 국가 총동원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도 결정적 문제다. 이 정부가 혁신 성장에 의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열매를 맛보려면 전 정부 때에 씨를 뿌려놓아야 했다는 말인데, 전(前) 정부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금 씨를 뿌려도 이 정부 임기 내에 열매를 거두기는 어렵겠지만, 다음 정부에서라도 거둘 열매가 있으려면 지금 당장 서둘러야 한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것이라니 더욱 그렇다.

[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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