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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터치! 코리아] 한국의 삼겹살과 예멘의 '카트'가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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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혐오는 이슬람 공포서 비롯… 여성들, 남성 우월 종교 거부감

더 많은 기부로 국제 기여하되 '문화 충격' 최소화해야

조선일보

박은주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


"한국에서는 남자는 물론 여자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어. 무신론자에게 맥주는 신자의 기도와 비슷해. 당신이 기쁘거나 슬플 때 기도를 하듯 말이야." '왜 술을 먹느냐'고 묻길래 답했더니, 그녀는 뾰로통해져 있었다. "술과 신을 같은 반열에 놓고 말해서 모욕당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몇 해 전 미국에서 무슬림 여성 몇 명과 여행할 일이 있었다. 미국에 연수 온 50대 여교수는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했고, 목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피자에 맥주 마시는 걸 불편하게 여겼다. 종교가 삶의 방식을 결정할 때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걸 깨달았다.

손님을 집안에 들이는 건 결혼과 비슷하다. "같이 지내자. 다만 맨발에 묻은 때가 거슬리니 발은 잘라두고 와"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 땅의 '난민 쇼크'는 솔직히 말하면 '이슬람 포비아'처럼 보인다. 우리 민족이 처음 겪는 종교 갈등의 서막이랄까.

8000km 떨어진 예멘인 550명이 찾아와 '난민'으로 받아달라 한다. 난리가 났다. 특히 여성들은 일처다부, 강간, 조혼, 강제할례, 명예살인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절대 불가'를 외친다. 이슬람 남성에게 '잠재적 강간범' 프레임을 씌운 것은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이다. 잘못됐다. 그런데 이런 선동이 먹히는 건, '여지' 때문이다. 과거에 발생한 모든 종교는 '남성우월주의'적이다. 대부분 시대에 적응해왔지만, 이슬람은 덜 그랬다. 이 '낙차'에 공포를 느끼는 이들에게 "가엽지도 않은가" '휴머니즘'으로 어필하는 건, 공허하고 게으른 설득 방식이다.

'대량 난민 수용 이후'의 삶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혹독한 일이 될 것 같다. 오랫동안 다원적 가치를 추구해온 유럽에서도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쉬운 예 하나. 예멘 남성의 90%가 '카트(Khat)' 잎을 씹는다. 안데스 산맥 거주자들이 '코카(Coca)' 잎 씹는 것과 같다. 둘 다 세계가 금지한 마약류다. 볼리비아 대통령은 얼마 전 "코카 씹는 우리 문화를 비난하지 말라"고 했다. 이들의 '자발적 중독 문화'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들이 한국의 폭탄주와 삼겹살 문화에 모멸감을 느낀다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수할 것인가.

세계난민협약에 가입한 것은 국격에 맞는 일이다. 일제와 6·25전쟁으로 자기 땅을 떠난 '유민(流民)'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인류애' 덕에 그들이 남의 땅에서 자식 낳고 살았다. '보은'의 때가 왔다. 방식이 문제다. 우리에게는 대량 탈북 사태 가능성도 상존한다.

허위의식을 벗고 솔직하게 '책임'과 '면피'를 고려할 때다. 인구 4100만명 우간다에는 난민 150만명이 넘게 산다. '가난한 나라가 더 착해서'가 아니다. 우간다는 난민 1가구당 25평 경작지를 제공하고, 난민은 경작을 통해 자기 먹을 걸 해결한다. 여기에 더해 세계에서 우간다에 돈과 물자를 지원한다. 미 대학의 한 연구는 '우간다에 정착한 1가구가 최대 220달러의 GDP 기여를 한다'고 분석했다. 우간다의 1인당 GDP는 711달러다. 우간다의 난민 정책을 두고 '실리적 관대함'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나라가 몇 더 있다.

손주를 낳아준 외국 며느리와도 극심한 문화적 갈등을 겪는 게 우리 민족이다. 난민은 더 어렵다. 이미 우리나라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 연간 2000만달러 이상을 기부,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기부국이다. 그래도 더 내야 한다. 사람을 받을지 돈을 더 쓸지, 정부는 고민하는 척하지 말고 서둘러 답을 내놔야 한다.

[박은주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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