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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Why] '모나리자'는 왜 1913년에서야 걸작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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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의 애정 만세]

조선일보

지난달 16일 공개된 제이지와 비욘세(왼쪽)의 뮤직비디오 ‘에이프쉿(Apeshit)’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등장한다. 1911년 이탈리아로 도난당했던 이 불세출의 걸작은 2년 만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루브르의 여왕’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 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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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의 신작 뮤직비디오를 봤다. 남편 제이지와 함께 찍은 '에이프싯(Apeshit)'. 모나리자가 나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루브르박물관의 그 '모나리자'다. 모나리자는 보기 힘든 그림으로 악명 높다. 인파를 뚫고 루브르에 가는 것도 엄청나게 에너지가 드는 일이지만 모나리자를 보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과연 루브르에 늘어선 줄은 상상 초월이었다. 그래서 파리에 한 달 살면서도 루브르에 가지 못했고, 모나리자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뮤직비디오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루브르의 모나리자도 더 유명해졌다. 그러니 앞으로도 모나리자를 볼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모나리자는 어떻게 유명해졌나? 도난 사건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1911년 루브르에서 사라졌다. 1913년 피렌체의 화상 알프레도 제리한테 편지가 날아온다. 제리는 피렌체 상류층 고객들을 상대하는 골동품상.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도난당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가지고 있다. 그다음에 멋진 말이 나온다. "이걸 그린 화가가 이탈리아인이었으니 이 그림 주인은 이탈리아다. 이 걸작을 본래 영감을 불어넣어 준 나라로 돌려주는 것이 나의 꿈이다." 보낸 사람 이름은 '레오나르도'. 잘 짜인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1913년 세기의 여름'에 나온다.

조선일보

이 책은 2012년 플로리안 일리스가 독일 피셔 출판사에서 출간한 것을 번역해 한국에는 2013년에 나왔다. 제목 그대로 '1913년 여름'에 있던 일들을 교차 편집 방식으로 들려준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쇤브룬 궁전 공원을 산책하다 마주치고, 빈에서 수요일마다 열리는 프로이트의 심리학회 모임에 루 살로메가 등장하고, 뮌헨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토마스 만이 있고, 카프카는 사랑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고, 남편 말러가 죽어 자유의 몸이 된 알마 말러는 코코슈카와 그로피우스 사이를 오간다. 나는 이 책을 2013년에 읽다가 중단했다. 내게 남은 여름을 위해.

다시 여름이고, 이 책을 다시 폈다. 7월에 어떤 일이 있었나 보았다. 피카소가 아프자 마티스가 꽃다발을 들고 병문안을 오고, 베를린에서는 군비가 증강되고 있고,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신분을 숨기고 애인과 온천장에 가고, 로베르트 무질은 신경쇠약 진단을 받아 휴가계를 낸다. "심장 노이로제를 동반한 신경쇠약이라, 모더니즘 시대의 고통을 이보다 더 멋지게 요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이런 문장이 출몰하는 데 있다.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20세기의 고유명사들이 점처럼 나열되는 데서 그쳤더라면 격조는 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1913년일까? "사람들은 올해가 액년(厄年)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짓눌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1913년을 '1912+1'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고, 쇤베르크의 '12음 음악'도 이 13에 대한 공포에서 나왔다고 저자는 쓴다. 쇤베르크는 13일의 금요일에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는데 실제로 13일의 금요일에 죽는다.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은 '1913: The Year Before the Storm'. 한국어판 제목과 같은 원제를 '폭풍 전해'라고 바꾼 것이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워왔듯이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세르비아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했고, 한 달 후 오스트리아 황제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세계대전이 되고,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가 된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다. 대신 전쟁 전의 유럽, 특히나 번성했던 문화 도시 베를린, 뮌헨, 빈, 파리 등을 오간다. 신경과민과 번아웃 신드롬이 번성하지만 불안의 사이사이, 흥분과 희열이 있다. 최고조는 역시 숨었던 모나리자가 세상에 다시 등장하는 장면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와서. "내가 레오나르도요" 하며 나타난 한 남자. 화상 알프레도 제리는 황급히 우피치미술관 관장에게 알리고, 물건을 확인하는데…. 뒷면에 루브르의 자산 번호가 적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짜 모나리자였다. 진품임이 확인되면 50만리라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방을 나온 우피치미술관 관장은 경찰에 즉각 알린다. 모나리자를 벽에 세워두고 낮잠을 자던 자칭 '레오나르도'는 들이닥친 경찰에 순순히 검거된다. 모나리자의 생환 소식이 이탈리아에 알려지자 몸싸움을 벌이고 있던 국회의원은 부둥켜안고 입을 맞춘다. 그러고는 곧 이탈리아 전역은 '모나리자 열병'에 휩싸인다.

감옥의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수한 감사 편지와 선물을 받는다. 시인 단눈치오는 이런 시를 짓는다. "명성과 명예를 꿈꾸었던 그, 나폴레옹의 도적질에 복수한 그, 그가 그녀를 국경 너머 피렌체에 돌려주었네. 오직 시인만이, 위대한 시인만이 그런 꿈을 꿀 수 있네." 자칭 '레오나르도'를 시인이라고 비유한 거다. 역시 시인이 시인을 알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 리치의 말도 그 못지않다. "저는 프랑스인들이 그 그림을 모사품이라고 판정하기만을, 그래서 '모나리자'가 이탈리아에 남기를 바랐습니다." 관료가 이렇게 우아하고 낭만적인 가정법으로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 모나리자는 파리로 돌아갈 것이고, 이탈리아는 모나리자와 작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 이야기는 모르지 않나? 프랑스 헌병과 이탈리아 경찰로 이루어진 의장대의 경호를 받으며 모나리자가 우피치미술관에 걸린다. 이 모습을 3만명이 지켜본다. 아이들이 피렌체로 와서 볼 수 있도록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에 휴교령을 내린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은 로마의 빌라 보르게세에 걸린다. 낮에는 단 1초도 눈을 떼지 않겠다고 한 문화부 장관 리치가 지키고, 밤에는 경찰 열둘이 지킨다. 그러고 나서 특등실을 타고 밀라노로 가서 브레라박물관에 2일 동안 전시된다. 이렇게 전국 순회를 한 모나리자는 특급열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간다. 기차 한 칸을 전부 차지하고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손을 흔들었다.

도난 사건이 있기 전 모나리자는 지금의 모나리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여왕 대우를 받은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여왕이 되었다. 1913년 일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지금,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한은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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