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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31] 자유롭게 춤추는 흑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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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막 도착한 아이가 파도를 쫓아 모래밭을 뛰어다니면 꼭 이럴 것이다. 팔랑대는 팔다리는 물 위에서 통통 튀는 물놀이용 튜브 같지 않은가. 불어로 ‘어린 여자’를 일컫는 ‘나나’는 프랑스계 미국인 미술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1930~ 2002)의 대표작이다. 그녀는 현란한 원색 무늬가 화려하게 펼쳐진 옷을 입고, 부풀어 오른 가슴과 큰 엉덩이를 흔들며,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채 춤추는 듯 신이 난 ‘나나’를 수도 없이 많이 만들었다. 그중 ‘검은 나나’는 1960년대 중반, 당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뜻에서 처음 선보였다.

조선일보

니키 드 생팔, 검은 나나, 1995년, 금속 지지대에 폴리에스터 레진과 유리섬유, 287x213x113㎝, 개인 소장.


부유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생팔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 가녀린 몸매와 흰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백인 미녀였다. 십대 때에 '라이프'와 '보그' 같은 대중 잡지의 표지 모델로 세상에 얼굴을 알렸으니 겉보기엔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어린 자녀들을 학대했고,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은 생팔은 몸매가 망가질까 두려워하다 약을 먹고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가야 했다.

생팔은 예술을 통해 이처럼 엄격한 종교, 보수적 가정, 인형 같은 미모의 밑바닥에 도사린 위선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풍성한 몸을 당당하게 드러낸 '나나'는 그녀처럼 사회 통념에 갇혀 살아야 했던 모든 이들을 대신해 자유롭게 춤을 춘다.

‘나나’는 생팔의 마음을 치유했지만, 몸에는 독이 됐다. 유리섬유와 폴리에스터 등의 화학 재료를 지속적으로 흡입했던 그녀는 젊어서부터 호흡기 질병을 달고 살다 만성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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