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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발언대] 의사 폭행은 환자 생명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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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상혁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지난 1일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취객(醉客)이 근무 중인 의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의사가 정신을 잃었는데도 머리채를 잡고 욕하는 취객의 모습이 병원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피를 흘리고 쓰러진 의사를 발로 걷어차는 등 난동을 멈추지 않았다. 취객은 다음 날 새벽 경찰에서 풀려났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구속됐다. 의사는 코뼈가 내려앉는 전치 3주 외상과 함께 정신적 충격을 받아 입원 중이다.

현행법상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폭행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솜방망이 처벌로 병원 내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5년 원광대 연구진이 응급실 종사자의 폭력 경험을 조사한 결과, 폭언이나 신체적 폭력 등을 경험한 의료인이 84%에 달했다. 주먹 등 육체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답변도 27%였다.

응급실에는 의료용 칼을 비롯해 위험한 기기가 널려 있다. 실시간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언제 실려올지 모르는 응급환자를 위해 24시간 진료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다.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은 응급진료를 멈춰 세워 국민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을 엄벌해야 하는 이유다.

선진국은 응급실 난동을 타인의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처벌한다. 미국 병원은 응급실에 병원 담당 경찰을 상주시킨다.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바로 체포하고 격리시킬 수 있다. 경찰뿐 아니라 병원 안전요원도 술 취한 환자 등에게 필요한 경우 수갑을 채울 수 있다. 영국도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위협하고 난동을 부리면 징역형에 처한다. 호주는 응급실에서 소란을 피우면 경찰서나 복지센터에 구금한다.

우리나라도 의료진을 폭행할 경우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술에 취해 병원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심신 미약'이라는 이유로 감형하는 조항을 없애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병원 내 폭행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응급실에서 폭행하면 무조건 처벌받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방상혁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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