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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천체망원경 부품 스타트업 세운 전직 피자가게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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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천체사진 찍던 황인준씨

별 움직임 자동추적 장비 개발

미국·일본 등 6개국에 제품 수출

중앙일보

충남 아산에서 ‘호빔천문대’를 운영하는 황인준씨가 자신이 만든 천체망원경 부품 앞에서 천체망원경의 원리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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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조립식 건물 안 10평 남짓한 방에 구경 40㎝ 안팎의 대형 굴절 천체망원경과 반사 망원경 7대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하늘이 맑고 달빛이 없는 어느 날 밤, ‘스르르’ 지붕이 열린다. 작지만 명실상부한 천문대다. 천체망원경 옆방은 사무실과 공장이 뒤섞인 풍경이다. 천체망원경의 핵심부품 ‘적도의’(赤道儀)를 만드는 곳이다. 별의 움직임을 동시에 따라가면서 관측할 수 있게 해주는 천문 관측용 자동추적 장비다.

충남 아산의 호빔천문대 주인 황인준(53)씨는 ‘별 보기’에 미쳤다가 그 취미가 업(業)이 된 남자다. 황 씨의 창업은 취미를 갓 벗어난 수준의 중년 일자리가 아니다. 정부 지원 한 푼 받지 않지만, 요즘 뜨는 혁신 기술형 스타트업의 전형이다. 1인 창업이지만, 일본·이탈리아·프랑스·영국·홍콩·미국 등 세계 6개국으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피자가게 사장님이었다. 그 전에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전전하다, 2005년 고향인 충남 아산으로 내려갔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인 ‘별 보기’를 하기 위한 차선책이었다. 그는 고향 산기슭에 자신만의 천문대를 만들고, 낮엔 피자가게 사장, 밤에는 별 보기의 이중생활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취미에 황 씨는 점점 더 빠져들었다.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천체망원경도 만들고, 국산 적도의 생산에 성공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 황 씨는 ‘별 보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피자가게 두 곳을 모두 점장에게 넘겼다. 천문대 이름을 딴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본격 창업에 나섰다.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1인 창업이지만 지난해 적도의 40대를 팔아 1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배 이상의 매출이 예상된다. 전체 매출의 70%가 수출이다. 비결이 뭘까.

취미로 닦아온 황 씨의 기술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천체 관측과 촬영에는 적도의가 필수다. 적도의는 전기모터로 작동하는데, 감속기어를 이용해 모터의 빠른 회전 속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황 씨는 2016년 말 대형 천체망원경에나 들어가는 하모닉 적도의를 세계 최초로 소형화·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제품 생산은 관련 중소기업에 주문·제작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수출 등 판매는 그간 천체 관측을 하며 만들어온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황 씨는 아마추어지만 국내 최고의 천체사진 전문가면서, 일본 등 외국에도 나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세계 행성 관측가 모임 정회원이면서, 한국아마추어 천문학회 이사를 지냈다. 그 덕에 현재 일본과 영국·이탈리아·프랑스·홍콩 5개국에 판매 대행사까지 두고 있다. 황 씨는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어쩌다가 취미가 직업이 됐다”며 “지금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은 없지만, 최소 80살까지 평생의 업으로 삼을 것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아산=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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