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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한국당 계파갈등 원인은 '2020년 공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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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의 내홍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열흘 간 친박과 비박의 고질적 계파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리더십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당 안팎은 계파로 갈려 서로를 향해 사퇴와 탈당, 정계은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의원들은 상대방을 향해 “지긋지긋한 친박 망령”(김성태 권한대행), “적반하장도 유분수”(김진태 의원) 등 거친 언사도 서슴지 않고 있다.

양 계파의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골이 내홍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나아가 근본적인 원인은 2020년 치러지는 21대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는 당권(黨權) 다툼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계파갈등 근본 원인은 ‘2020년 총선 공천권 누가 갖나’”

조선일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란 대형 현수막을 배경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 수습책을 논의하기 위해 비상 의원총회를 열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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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는 한국당의 계파갈등을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에 대해 밤낮으로 고민해도 모자랄 판인데 계파싸움을 하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은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쥐는 당 대표를 누가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천권을 쥐면 상대 계파를 청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헌·당규상 당 대표의 임기는 2년이기 때문에, 당 수습을 위한 비대위 활동 기간을 거치고 난 뒤 당권을 잡는 당 대표는 21대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당 관계자는 “양 계파 모두 ‘한국당 구성원 모두가 반성하고 책임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상대 진영을 도려내려는 것”이라고 했다.

친박계 한 의원은 “김성태 권한대행을 필두로 복당파 의원들이 어용 비대위를 세운 뒤 눈엣가시였던 친박계를 칼질하고 김무성 의원을 당 대표로 세우려고 한다”며 “박성중 의원의 메모 내용이 그들이 그리는 시나리오”라고 했다. 친박계에서는 비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에 대해 “당 대표가 돼서 공천권을 행사하려고 수년전에 했던 불출마 선언을 ‘재탕’했다”고 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20대 총선, 대선, 6·13 지방선거 모두 (지도부를) 누가 했느냐. 비박계와 홍준표 대표가 한 것 아니냐”며 “친박계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정종섭·윤상직·유민봉 등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수석 등을 지낸 초선 의원들이 차기 총선 불출마 의향을 밝힌 것도 중진들의 결단을 압박하기 위해서란 해석이 나온다.

반면 비박계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이 이 모든 사태의 원죄”라며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인적 청산을 통해 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한 사람들이 지금도 설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외부에서 모셔 올 혁신비대위원장이 우리 당 의원들 한 명 한 명을 뜯어보고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비박계 관계자는 혁신비대위 이후 당권 문제에 대해서는 “혁신비대위 이후에 생각할 일”이라면서도 “사심이 없고 당을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열흘…결국 계파갈등으로
6·13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참패를 기록한 한국당은 지방선거 이후 열흘가량의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수습방안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채 고질적인 계파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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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 당시 대표는 지방선거 다음날인 14일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당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맞게 된 한국당은 15일부터 혼란에 휩싸였다. 당 수습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비상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권한대행은 “한국당의 해체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는 의원들은 서로를 겨냥해 책임 공방을 벌였다. 결론 없이 의총이 마무리됐고, 의원들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써진 현수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죄 퍼포먼스를 했다. 의원총회에 앞서 정종섭 등 5명의 초선 의원들은 중진 의원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주말을 끼고 잠시 조용했던 당에 논란의 불을 당긴 것은 김성태 권한대행이었다. 김 권한대행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은 지금 이 순간부터 곧바로 중앙당 해체 작업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중앙당을 해체하고 외부 인사가 전권(全權)을 갖는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혁신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친박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재선·초선그룹이 각각 모였고, 친박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들은 “권한도 없는 김 권한대행이 독단적으로 당을 운영하려고 한다”, “김 권한대행의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는 월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19일 초선 의원 모임에서 언론 카메라에 비박계 초선인 박성중 의원의 휴대전화 메모가 포착됐다. 이 메모에는 ‘친박·비박 싸움 격화’, ‘세력화가 필요하다→적으로 본다/목을 친다!’ 등의 계파 갈등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 의원은 초선 의원 모임 직전 비박계 의원들로 구성된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 의원들의 모임에서 이 메모를 작성했다고 한다. 박 의원의 메모 내용과 비박계 의원들끼리 모임을 가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친박계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김성태 권한대행이 “어떤 계파 간의 목소리도 용인하지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21일 의원총회에서는 그간 침잠했던 ‘친박’, ‘비박’ 등 계파성 발언이 노골적으로 나왔다. 친박계에서는 김성태 권한대행 사퇴와 김무성 의원 탈당, 박성중 의원 출당 등의 요구가 나왔다. 비박계는 지금 상황에서 김 권한대행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로 맞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2일 “다시 친박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다”고 했고, 이에 대해 친박 의원들은 “있지도 않은 친박에 기대 정치생명을 연명할 생각 말고 쿨하게 사퇴하라”고 비판했다.

김성태 권한대행은 빠른 시일내에 혁신비대위를 꾸려 인적 구성 재편을 비롯한 전면적인 당 혁신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친박계의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친박계는 ‘김 권한대행 퇴진 운동’ 등을 불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져 당분간 당 내홍은 계속될 전망이다. 친박계가 다수인 초·재선 의원들이 25일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이때 김 권한대행 퇴진을 위한 연판장을 돌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당 전현직 당협위원장 모임인 재건비상행동은 24일 당내 일부 인사들의 정계 은퇴 및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촉구하며 ‘한국당 정풍대상자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계파색이 옅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최악의 갈등은 피하자’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어 극적으로 갈등이 봉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주말 동안 물밑에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이같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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