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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김지연의 미술소환]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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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여름,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작가 올루 오귀베는 카셀의 중심지인 쾨니히 광장에 16m에 달하는 콘크리트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그는 이 오벨리스크 네 면에 ‘마태복음’ 25장 35절의 마지막 구절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를 아랍어, 터키어, 독일어, 영어로 새겨 넣었다.

오귀베가 전쟁, 기아, 또 다른 이유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자 제작한 작업이라고 설명한 ‘이방인과 난민을 위한 기념비’는 전 세계 6000만명에 달하는 난민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작품은 “박해받고,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을 향한 관심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원칙이라는 것을 확언한다”고 평가받으며, 아놀드 보데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문제는 카셀시 문화위원회에서 이 작품의 구매 가능성을 논의하면서 시작되었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토마스 마테르너는 오벨리스크를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추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불쾌함을 드러냈고, 녹색당의 게르노트 뢰즈는 마테르너의 표현이 나치 시대 현대미술을 탄압하며 사용했던 단어 ‘퇴폐’를 상기시킨다고 대응하며 논쟁을 이어나갔다. 작품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왜곡된 예술이라고 말하는 한, 우리에게는 오벨리스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매가 결정된 이후 논쟁은 카셀시의 매우 상징적인 장소에 이 작품을 영구설치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로 넘어갔다. 이전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카셀시가 합법적으로 작품을 구매하여 소유권을 확보한 후 폐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왔다. 콘크리트 오벨리스크는 이렇게 ‘논란’을 이어가며 ‘논쟁’의 매개로 아직 광장에 서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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