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에 등 돌리는 아랍계 유권자들 “미 무기 지원으로 이스라엘이 대공세 펼쳐”

지난 5월19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통적으로 미국 민주당에 투표했던 아랍계 미국인들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고 가자지구 학살을 막지 못한 것에 실망해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비영리조직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아랍계 미국인 등록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자 가상 대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42%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41%)보다 1%포인트 앞섰다.

‘적극적으로 투표하겠다’고 답한 사람 중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는 46%, 해리스 부통령 지지자는 42%로 두 후보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는 지난 대선이 열린 2020년 같은 기관이 시행한 조사에서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가 59%,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35%의 지지를 받은 것과 비교되는 결과다.

AAI는 이 설문조사를 지난달 9~20일 실시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대원 등이 소지한 무선호출기(삐삐)·무전기를 동시 폭발시킨 때는 지난달 17·18일, 레바논 전역에 공습을 시작한 날은 23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폭살한 것은 27일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1%는 ‘가자지구 전쟁이 투표 결정에 중요하다’고 답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향후 이스라엘에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할 경우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54%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즉각적 휴전을 요구하거나, 외교·군사 지원을 중단하면 그를 뽑을 것이라는 응답자는 50%였다.

AAI는 “여론조사 시작 30년 이래로 가자지구 전쟁만큼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준 것을 본 적이 없다”면서 “바이든 정부가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막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해 아랍인 공동체가 느낀 분노와 절망의 수혜자는 트럼프였다”고 분석했다.

그간 민주당은 반이민 성향의 공화당보다 아랍계 미국 유권자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아왔다. AAI가 지난 10여년간 했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평균적으로 공화당 대비 2배가량 많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난달 25일 미국 내 최대규모 무슬림 단체인 ‘엠게이지 액션’이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가자지구 휴전을 중재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론이 일면서 해리스 부통령 대신 경쟁 후보를 뽑거나,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아랍계 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내 무슬림 모임인 ‘미국·이슬람 관계 협의회(CAIR)’가 지난 8월 말 미시간주의 아랍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는 제3당인 녹색당의 질 스타인 후보(40%)가 해리스 부통령(12%)과 트럼프 전 대통령(18%)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린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 ‘헨리 포드 센티니얼 도서관’ 앞에서 압둘라 하무드 디어본 시장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5일에는 아랍계가 모여 사는 미시간주 디어본 지역에서 약 1000여명의 주민들이 미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해서 이스라엘이 대공세를 펼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레바논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비판했다.

시위에는 레바논 출신 이민자의 자녀이자 민주당 소속 압둘라 하무드 디어본 시장도 참석했다. 그는 “우리는 폭탄으로 모든 학교를 폭격하고, 아이들을 공격해서 산산조각을 내는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 대통령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이런 우리의 메시지, 우리의 가치관을 11월 대선의 현장에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내 아랍계 인구 비중은 약 1%로 소수이지만,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합하는 지역에서 이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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