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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사유와 성찰]변화와 변화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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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화를 갈구합니다. 변화를 갈구하는 마음에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어 변화를 갈구하기도 합니다. 긴 역사의 시대를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태평성대로 각인된 요순시대의 사람들도 변화를 갈구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경향신문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로 점철돼왔습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그 다양한 욕구들이 갈등과 충돌, 화해와 공존의 리듬을 타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오늘을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들은 변화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변화는 우리의 삶에 있어 물과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디로 변화할 것인가 하는 방향입니다. 그 방향을 누가 결정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항상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지금까지 변화에 수반되었던 엄청난 조작과 억압과 충돌이 이제 또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변화에 따른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변화의 안정적 기대는 사회적 요인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계문명의 발달로 기인한 정보화가 더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들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다양성을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0년이 지나서 다시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옛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 갔던 것이 오히려 더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거리며 사람들의 모습이며, 심지어 예전에 들렀던 몽마르트 언덕의 기념품 가게도 그대로였습니다. 이것만으로 변화하지 않은 도시의 놀라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인상 깊어 구입해 한동안 책상 한쪽에 두었던 그 그림이 그대로 20년 뒤에나 옴직한 또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센강 유람선에서 영어를 제치고 중국어 안내방송이 먼저 흘러나오는 것을 빼면 파리는 내게 잠든 도시로만 보였습니다.

세상의 둔감한 변화는 선진국만이 아니었습니다. 네팔 자원봉사 학교의 후원을 위해 서귀포시 유니세프 후원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함께 방문했습니다. 30년 전쯤부터 간간이 들렀지만 수도 카트만두의 모습은 늘 별다르지 않은 풍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5권의 노트와 연필 한 타스, 먼 선진 한국에서 직접 마련해간 과자봉지를 받기 위해 850명 넘는 학생들이 특이하게도 운동장조차 없는 공립학교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순수하게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 외에는 달리 기억할 것이 없는 듯했습니다. 변화라고는 한국 기업들의 간판이 즐비하고, 지진으로 기울어진 사원들이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서 지지대로 받쳐진 상태로 우리들을 애절히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늘 이 정도의 속도로 변하는데 우리들만 줄달음치며 변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일찍이 불교는 변화를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전제를 두고 그 변화를 수용하고 갈망하면서 나타나는 인간의 갈등을 세심히 살펴나갔습니다. 변화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끊임없이 변화를 욕구하는 그 마음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변화가 우리의 갈증을 결코 채워주지 못하고, 변화의 갈망이 우리를 행복의 터전으로 이동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변화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우리는 괴로워합니다. 괴로움을 멈추려면 변화를 멈춰야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멈춰지지 않습니다. 변화를 그냥 흐르는 물같이 받아들일 수 있으면 한결 모순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총선이 끝났습니다. 몇 차례 선거 결과의 변화를 한반도 지형에 색으로 칠한 그림을 보니 정말 변화는 물결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를 아직도 완강히 거부하는 지역적 정서는 무엇을 대변하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파리처럼 선진화되어 더 이상 변화가 모색되지 않는 것인지, 네팔처럼 변화의 내적 동력이 소진되어 버렸는지 쉽게 단언하지 못하겠습니다. 변화는 진리이고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괴로움은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작은 반도에 몰아칠 강한 변화의 물결에 늘 가슴 설렙니다. 설령 얼마의 아픔이 동반되더라도 이제 제법 익숙해진 변화의 쾌속열차에 얼른 탑승하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해는 지고 달은 솟아 신나는 여름의 풍경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성원 스님 신제주불교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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