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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김정은 따라하는 트럼프…“나랑 뜻 다르면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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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부러워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회담 결과를 비판하는 언론을 “반역적”이라고 공격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을 숭배하는 것처럼 미국인들이 자신을 대하길 원한다는 ‘농담’을 하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스스로를 독재자와 동일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각) 보수 정치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진행하는 TBN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북 공동 성명과 관련, “우리는 훌륭한 합의에 도달했다. 가짜뉴스들이 이걸 그들 방식대로 보도하고 있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며 “(그런 식의 보도는) 거의 반역적”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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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21일 보수 정치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진행하는 TBN 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 T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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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갖가지 구설에 오르면서 언론과 대립각을 이뤄왔다. 그는 지난 20일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열린 지지자 대상 유세 현장에서도 기자들을 가리켜 “저 뒤에 매우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가 기자들을 조롱하는 동안 CNN 등 특정 언론사를 지목해 야유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서도 미북 정상회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질타했다. 그는 지난 17일 “가짜뉴스들이 모두 힘을 합쳐 내가 (김정은을) 만나고 북한에 너무 많은 걸 줬다고 말하는 것이 웃긴다”며 회담을 이끈 게 본인임을 강조했다. 다음날인 18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과 친하게 지내고 내가 한 것처럼 합의를 위한 첫 조치를 취했다면 가짜뉴스들은 그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불렀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을 “반역적”이라고 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첫 국정연설에서 박수 갈채를 보내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을 “반역적, 비미국적”이라고 칭해 비난받은 바 있다. 당시 셸던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회의장에서 다 같이 일어나 ‘친애하는 지도자’께서 말을 할 때마다 자동으로 박수를 치는 북한 방송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존 테스터 민주당 상원의원도 “박수를 치고 안 치고는 우리 선조들이 만들고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희생을 감수한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의 권리”라며 “대통령의 그 발언은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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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춘희 북한 조선중앙TV 앵커가 2018년 6월 13일 전날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을 보도하고 있다.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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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그가 북한 관영방송의 보도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왔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4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뉴스도 북한 앵커처럼 날 칭송하지 않는다”며 “이 여성 앵커가 미국 방송국에 취직해야 한다”고 농담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여성 앵커는 리춘희로 추정된다. 리춘희는 김정은의 부친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목소리의 침투력이 좋다며 특히 아꼈던 것으로 알려진 46년차 베테랑 앵커다. 그는 미·북 정상회담 다음 날인 13일 조선중앙TV에 나와 정상회담 소식을 직접 보도하며 김정은을 “정력적인 대외활동으로 조선반도 정치정세 흐름을 주도하시며 조미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으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역적” 발언에 미 언론은 펄쩍 뛰었다. 워싱턴 정치전문매체 ‘롤콜’은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더러 사형이나 최소 5년의 징역형에 이를 수 있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국제인권단체와 여러 기관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목하는 북한의 지도자에 대해 찬사밖에 늘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강한 지도자”, “존경할 만하고 똑똑한 협상가” 등으로 지칭한 바 있다.

시사 매체 ‘뉴스위크’는 그렉 마가리안 워싱턴대 법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반대를 미국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만약 그가 권한을 쥐고 있는 행정부가 반역죄에 대한 처벌을 집행했더라면 수정헌법 1조는 의미를 잃고 민주주의는 종말을 맞았을 것”이라고 했다.

미 정치풍자쇼 ‘더 데일리 쇼’는 아예 폭스뉴스와 조선중앙TV를 비교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더 데일리 쇼’의 호스트 트레버 노아는 이날 트위터에 “정치 선전 대결!”이라는 글과 함께 이 영상을 올렸다. 여러 개의 클립으로 구성된 영상에는 싱가포르 회담을 보도하는 폭스뉴스 앵커가 조선중앙TV 앵커와 비슷한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멘트를 하는 모습이 담겼다.

폭스뉴스 앵커가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며칠 전에 외교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말하는 장면 뒤에 조선중앙TV 앵커가 “세계적 사교를 이룩하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이어붙인 식이다. 현재 이 트윗의 조회 수는 94만건을 넘어섰다.



[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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