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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세상사는 이야기] 나무 고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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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도시에서는 봄이 너무 짧다고들 하는데 농촌에서는 봄이 혹독하리만큼 길다. 농사는 자칫 조금만 때를 놓치면 한 해를 다 망치는 터라 할 일을 절대 미룰 수 없는데 봄은 그런 일들이 숨 막히도록 연이어지는 철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농부랄 수야 없고 서원지기에 불과한 나도 봄날에는 주요 해외 일정마저 최대한 미룰 수밖에 없을 만큼 일이 많다. 아직도 서툰 농부 노릇에다 이번 봄에는 여름 같은 폭우며 더위, 가뭄이 엇갈려 안 그래도 많은 일이 더 가중되었다. 서툴러도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고, 밭일 좀 한다고 책을 안 볼 수야 더더욱 없으니 주경야독이 두루 극에 달했다.

농부까지 된 건 나무 때문이다. 내가 지키는 서원 '여백서원'에는 나무가 많고 그 나무들이 소중해서 거름을 좀 주고 싶은데, 거름 포대가 너무 무거워 거름을 사오는 것이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이웃 농부들이 대량으로 거름을 배달받을 때 나도 좀 끼어볼까 하는 일념으로 남의 땅까지 조금 빌려 경작하며 농부 자격을 얻기에 이르렀다.

서원에는 잘 키워야 할 나무가 많다. 서원을 짓기 오래전부터 넓은 서원 터가 나무 고아원이었기 때문이다. 사연이 좀 많은데 15년쯤 전에 아주 우연히 몇 평인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땅을 덜컥 계약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일이 있었다. 그에 앞서 친구의 주선으로 낯선 마을의 폐옥 하나가 오래도록 소망하던 집필실이 되었는데, 아무런 권리도 없는 그 초라한 다락방이 소중해서 행여 잃게 될까봐 겁이 난 나는 작은 땅을 구해서 여차하면 바꾸자고 할 궁리를 했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나온 땅이 없었고 이웃 마을에 땅이 나왔다기에 가봤더니 큰 땅인데, 얼마나 큰지도 정확히 모른 채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해버렸던 것이다. 가까스로 빚을 갚아나가던 10년 동안 그 터에다 학교 계단 틈, 돌 틈에서, 하수구 속에서 잘못 싹튼 나무들을 구출해 심기 시작했다. 빚도 차츰 갚고, 겨우 한 뼘씩이던 그 '고아' 나무들이 조금씩 모양이 잡혀갈 때쯤 서울 집을 빼서 서원을 짓고는 힘겹게 장거리 출퇴근을 했다. 서원을 찾는 사람들이 차츰 그 '고아' 나무들을 '입양'도 했다. 입양은 쉽다. 그저 자기 나무라고 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입양된, 그러니까 주인이 있는 나무들이 아무리 봐도 다른 나무들보다 잘 자란다. 아마도 나무를 보면 자연히 그 주인 생각이 나서 자주 바라보고, 그러다 보면 뽑은 잡초나 낙엽도 거름이 되라고 그 나무 발치에 한 줌씩 놓아주곤 했으니 그럴 것이다. 혼자 있어도 늘 많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아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얼마나 귀한지. 거름이라도 좀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급기야 나는 분수 모르고 농부까지 돼버렸고, 구출해온 그 어린 고아 나무들이 지금은 모두 믿을 수 없을 만치 우람한 나무가 돼 서원을 지키고 있다.

힘겨웠던 봄도 가고 어느덧 여름이다. 잡초는 무섭게 자라지만 그래도 일이 봄날처럼 많지는 않아서 조금 숨을 돌린다. 다투어 피던 봄꽃은 다 지고, 천지가 한 빛깔 초록으로 무성하다. 머지않아 더 뜨거운 여름도 오고 장마도 닥치겠지만 그렇게 겪을 것 다 겪고 또 기다리고 나면 수확의 가을이 오겠거니, 나무들은 더욱 자라겠거니 한다. 이번 봄에는 나랏일 역시 유난한 격동의 연속이었다. TV가 없는 나조차도 열두 시간이 넘도록 컴퓨터 뉴스를 켜놓고 푸른 도보다리 위의 일거수일투족을 촉각 세우고 지켜보는 감격도 있었고, 도널드 트럼프의 변덕에 일희일비하며 롤러코스터를 탄 듯했던 나날도 있었다. 일곱 장이나 되는 투표용지 하나하나에다 유난히 간절한 마음으로 도장을 찍은 투표도 했다.

연속되던 큰 파도가 일단은 한고비 지나간 지금, 여름의 문턱에서, 놀람과 기대와 희망과 분노가 착종되던 그간의 감정도 조금씩 가닥이 잡힌다. 하나로 모아보면 이런 농부다운 감이자 소망인 것 같다. 역사야 돌아보면 서린 한도 아직 많고 사연도 많고 감격의 순간들도 있지만 이제는 차근차근 실행해나가고 신뢰로써 지켜보며 기다리며 힘을 모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남북 관계처럼 결코 다시는 한 걸음도 되돌아가서는 안될 일이든, 또 민생처럼 언제나 꼭 돌보아야 할 일이든 모두 다 그런 것 같다. 누구든 나름으로 성의는 있고 역량까지 이미 국민도 정부도 충분히 발휘해 보였지 않은가.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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