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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다른 삶]“엉덩이 때릴 만했어, 여보” “지금 잘 하고 있대, 엄마가” 자책하는 아내와 눈물 뺀 딸 사이…또 하나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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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의 일기일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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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를 자주 읽는 독자들이 보면 우리 가족은 마냥 행복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큰아이 미우에게 많은 짐을 지운 측면이 분명히 있고, 그래서 미우는 신체적으로는 ‘아이’면서도, 항상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됐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이제 사춘기에 접어드니 또 다른 질풍노도가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솔직히 무섭다.

미우의 강박관념은 자기 뜻대로 안될 경우 동생들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으로 자주 나타났다. 나는 어렸을 때 좀 맞고 자란지라 형제자매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거 별로 위화감이 없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워낙 비폭력주의자인지라 미우의 이런 행동을 항상 꾸짖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가 아내 스스로 분을 못 이겨 아이들 엉덩이를 때리기도 한다는 것. 물론 그런 날에는 하루 종일 후회 섞인 카톡 메시지를 보내온다. 그러면 나는 (바빠 죽겠는데) 네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하기 바쁘다. 그리고 집에 가선 항상 아내 편을 들었고 아내가 잠이 들면 몰래 종종걸음으로 아이 방에 건너가 이번엔 아이를 위로해 준다. 늦은 시간이지만 높은 확률로 아이들은 안 자고 있고 대화를 나누다가 스르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곯아떨어지는 경험을 몇 번이고 했다.

예를 들어 우선 아내한테 “어떡하지? 방금 미우한테 너무 화가 나서 걔 엉덩이 한 대 쳤는데…”라는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나는 “한 대야? 두 대야? 아니면 세 대 이상?”이라고 답장을 보낸다. 어이없다는 투의 재답장이 온다.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미우를 때렸다는 게 중요하지.”

“아냐, 매우 중요해. 한 대 때리고 관뒀으면 제어했다는 거고 두 대 때렸다면 한계에 도달했다는 거고 세 대 이상 때렸으면 감정이 폭발해서 제어가 안됐다는 거니까 폭력을 행사한 거니까. 엄청나게 중요한 거야.”

그럼 잠시 후 아내는 “그래? 난 한 대만 때렸는데”라고 보내오고 나는 “그럼 괜찮아. 문제없고 오히려 당연한 거야. 너도 인간이잖아. 앞으로 안 때리면 돼”라고 답장을 보낸다.

말도 안되는 메시지 대화 같지만 아내는 묘하게 기뻐했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가능한 이유는 아내가 한 대만 때리고 그만둘 품성을 지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도 “한 대 쳤는데…”라고 분명히 말했고. 참고로 나는 절대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내가 많이 맞아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년시절에 맞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내가 뭔가를 제어하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삐뚤어졌다. ‘이 시간에 집에 가봐야 맞을 게 뻔하니까’ 하며 아예 외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이들을 때린다고 해서 좋게 변한다는 생각은 아예 지웠다.

하지만 전업주부인 아내는, 일단 나와 상황 자체가 다르다. 24시간을 아이들과 붙어 산다. 다들 개성이 뚜렷한 아이들이다. 말썽을 피워도 일관된 패턴이 없다. 네 가지 개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 네 가지 패턴에 맞춰 아이들을 접하다 보면 정신상태가 엉망이 된다. 엉망인 자기 심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손이 나갈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 대 때리고 난 후 ‘아 이러면 안돼’라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 때려서 아이가 일시적으로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폭력이 역시 최고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착각에 빠져 허구한날 손이 먼저 나가버리면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내는 그런 의미에선 금방 반성하고 또 웬만해선 손을 안 드는 부류에 속한다. 그래도 간혹 손을 댈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아내를 위로(랄까 정당화)한 후 아이 방으로 몰래 잠입한다. 아이들은 울고 있거나 운 흔적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한다.

이번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미우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소프트볼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연습이 너무 힘들어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 했다. 그게 며칠 동안 쌓이다가 아내가 폭발했고(그래봤자 엉덩이 한 대지만) 그것 때문에 미우는 울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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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 집 로컬룰은

속옷 빨래 등 스스로 하기

셋째 준이 아끼는 피규어는

안 치운 죄로 쓰레기통에


이번에 원인 제공은 첫째 미우

소프트볼 동아리 연습에 지쳐

집에 와선 아무 것도 안 했다


손찌검 후 후회 가득한 아내가

잠들 때까지 위로, 또 위로

다음엔 미우 방문을 ‘똑똑똑’

미리 준비한 손수건을 슬며시


“코 푼 건 니가 빨아야지?”

미우가 일부러 눈을 흘기지만

마음이 풀어진 게 느껴진다


참고로 우리 집 로컬룰은 자기 세탁물, 특히 속옷은 자기가 손빨래하고(나도 예외가 아니다) 보통 세탁물은 세탁물 바구니 안에 넣어놔야 한다. 밥은 자기가 먹을 만큼 푸고 다 먹은 후 식기는 스스로 치운다. 마른 세탁물은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 갠다. 지금은 미우와 유나가 개는데, 내년부터는 셋째 준도 개야 한다. 어지럽힌 문방구, 필기도구는 물론 본인이 치워야 하며 잘 시간까지 안 치우면 과감하게 버린다. 준이 이 룰을 안 지켰다가 만화 <원피스>의 캐릭터 ‘토니토니 초파’ 피규어가 버려졌다. 다음 날 상황을 인지한 준은 세상이 멸망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룰을 안 지킨 준의 잘못이라고 강하게 나갔고, 그다음부터는 누구보다 잘 치우게 됐다. 물론 몇 개월 후 태권도 승급시험 합격선물로 같은 피규어를 사줬다. 그때 세상이 다시 창조된 듯한 함박웃음을 짓던 준의 환호성이란.

아무튼 엄마는 위로했으니 이젠 미우를 위로해야 한다. 똑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밤 10시다. 보통이라면 잘 시간인데 미우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다. 안 자고 있다. 이불을 반드시 목까지 내리고 자는 애다. 푹 뒤집어썼다는 말은 노크 소리를 듣고 황급히 끌어올렸거나, 원래부터 이불 속에서 울고 있거나 그랬다는 말이다.

“자냐?”

“……”

“자나 보네. 잘 자라.”

“안 자. 안 잔다고!”

“어휴, 놀래라. 왜 소리를 질러. 너 그러다 엄마 깨면 어쩌려고.”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지며) 엄마 자?”

“응. 자는 거 확인했어.”

그러자 이불을 스르르 목까지 내린다.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다. 미리 준비해 간 손수건을 건네주자 자기 손으로 눈 주위를 닦더니 코까지 푼다. 코 푸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야, 엄마 깬다니까. 살살 풀어.”

“몰라. 이렇게 클 줄 몰랐지.”

미우가 손수건을 다시 나에게 건네줬다.

“코 푼 건 네가 빨아야지. 왜 나한테 주냐?”

“아빠까지 정말 그럴래?”

일부러 눈 흘기는 미우지만 이미 마음이 풀어져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럴 땐 굳이 많은 말이 필요없다. 이제 중학생이니 사춘기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괜한 설교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이쯤에서 물러나면 된다.

“벌써 10시네. 빨리 자라. 내일 또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응. 시대회 우승하는 바람에 계속 아침연습이야.”

“그래. 엄마한테 들었어. 너도 열심히 잘한다고 그러더라.”

“진짜?”

“응. 진짜 그런 말 했어. 도대회도 높은 데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 너도 가을엔 출전해야지.”

“응! 열심히 할게.”’

어느새 밝아진 표정의 미우를 쓰다듬고 조용히 일어나 나간다. 방문을 닫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미우가 들릴 듯 말 듯 속삭인다.

“아빠. 고마워.”

이렇게 또 한 건을 해결했다. 그런데 아빠의 역할이 (나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런 것 같다. 물론 맞벌이 부부라면 가사, 육아를 분담하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 집처럼 아내가 전업주부일 경우 아빠는 사실상 할 일이 별로 없다.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아내나 아이들이 오히려 말린다. 자기들이 구축한 집안의 룰이 망가진다는 거다. 아이들 책상 근처에도 못 간다. 뭔가를 만지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빠, 스톱!”을 외친다. 아내도 부엌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한다. 몸이 편하긴 한데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어 소외감이 들 때도 있다.

일본 사회의 내 또래, 혹은 선배 아빠들이 겪고 있는 소외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집에 가도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밖으로 나돌다가 나중에 황혼이혼을 당한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아빠 취급을 안 한다. 이 악순환에서 탈피하려면 룰을 설정하고, 그 룰이 어그러졌을 때 아빠는 룰을 어그러뜨린 당사자들을 중재해야 한다. 내가 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내 방식이 맞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한국에도 분명히 소외된 아빠들이 있을 텐데 조금씩 용기를 내서 아내와 자식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찾길 바란다. 참고로 일본은 6월 둘째주 일요일이 ‘아버지의날’이며 6월은 ‘아버지의달’이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 힘내시라. 건투를 빈다.

▶필자 박철현

경향신문

2001년 도일. 한국에선 영화 연출을 공부했지만 일본에선 오마이뉴스재팬, JP뉴스 등에서 기자로 10년간 일했다. 도쿄 우에노에서 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일본인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고, <일본 제국은 왜 실패했는가>와 <인터넷 동반자살>을 번역했다. 1976년생.


<필자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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