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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안정 과반 정당이 없다… 흔들리는 '유럽 빅4 내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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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정당 몰락하고 극우·극좌정당 약진… 양당체제 무너져

독일 연립정부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 출범 3개월 만이다. 연립 내각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기사당의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공개적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반기를 들었다. 메르켈의 난민 유화 정책을 비판하며, 이달 말까지 말미를 줬다. 독일로 들어오는 난민 수를 줄일 구체적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연정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당 의석 비율은 6.5%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사당이 없으면 독일 연립 여당은 과반에서 2석 모자라게 된다.

이탈리아는 포퓰리즘 성향의 원내 1당 오성운동과 극우 성향의 원내 2당 동맹당이 연정을 구성했다. 두 정당은 통치 경험이 없다. 출범 직후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탈퇴를 시사해 글로벌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했다. 노골적으로 난민을 거부해 프랑스 등 이웃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다. 급기야 동맹당의 당수 마테오 살비니가 반난민 정책으로 지지율을 높이자, 초조해진 오성운동이 연립 파트너인 동맹당을 비난하는 내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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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이탈리아는 대표적 의원내각제 국가다. 그동안 의원내각제는 유럽식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토대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각국에서 양당제가 무너지고 여러 정당이 군웅할거식 다툼을 벌이며 혼란이 커지고 있다. 현재 유럽의 '빅 5' 국가 중 대통령제를 채택한 프랑스를 제외하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국 모두 원내 1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국정 운영에 애를 먹고 있다.

내각제 원조 격인 영국 의회도 홍역을 앓고 있다. 집권 보수당은 의석 49%만을 차지하고 있다. 10석짜리 미니 정당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을 끌어들여 간신히 과반을 만들었다.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일정과 방식을 놓고 갈라진 정치권을 통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스페인에서는 이달 초 페드로 산체스 사회당 대표가 새 총리가 됐다. 하지만 산체스는 의석 24%를 들고 아슬아슬한 약체 정부를 꾸리고 있다.

유럽 내각제가 흔들리는 이유는 중도 성향 기존 정당이 몰락하는 가운데 극우·극좌 정당이 약진하면서 의회가 여러 당으로 쪼개졌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내각제 토대였던 양당(兩黨)제가 붕괴해 버린 것이다. 독일은 2013년 총선에서 1당 기민당과 2당 사민당이 전체 의석의 71%를 차지해 양당 체제에 가까웠다. 작년 총선에서도 두 당이 1당과 2당을 지켰지만 합친 의석 비중이 49%로 확 줄었다. 이탈리아 의회엔 열두 정당이 난립해 있다. 그중 다섯 정당이 2013년 총선 때는 없었던 신생 정당이다. 작년까지 집권당이었던 이탈리아 민주당은 40%대였던 의석 비율이 10%대로 추락했다.

극우·극좌 정당이 양당 체제가 붕괴한 틈을 차지했다. 이들은 유럽 재정 위기 후 가해진 유럽연합의 재정 간섭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을 두려워하는 표심을 파고들었다.

스페인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유로화를 둘러싼 회원국별 이해관계와 난민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각국 총선에서 표출되고 있다"며 "저마다 자국의 입장만을 강조하면서 EU 존립을 흔들고 있다"고 했다.

유럽 '빅 5' 중 프랑스만 국정 혼란이 눈에 띄지 않는다. 여당 '전진하는 공화국(LREM)'이 54%의 안정적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어 소모적 정쟁(政爭)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크롱의 철도 개혁안을 노동계가 반대했지만 야당 의원이 140명이나 찬성표를 던질 정도로 여야 정책 조율도 원활한 편이다.

유럽 각국에서 내각제가 흔들거리고 있지만, 내각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오랫동안 뿌리내린 제도인 데다, 개헌이 필요해 방법상 쉽지도 않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연정 출범에 애를 먹고 연정 출범 후에도 다툼이 가열되는 등 유럽 각국 의회가 공전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없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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