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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독전` 농아 남매 역 김동영, "겸손한 배우가 길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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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혼술남녀`에서 김동영은 노량징 공시생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사진제공=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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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연배우다-17]

그가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해온 배우임은 알았으나 필모그래피를 훑으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펴보자면 '말죽거리 잔혹사'(2004), '꽃피는 봄이 오면'(2004), '사랑해, 말순씨'(2005), '짝패'(2006), '완득이'(2011), '청춘 그루브'(2012), '신촌좀비만화'(2014), '끝까지 간다'(2014), '위대한 소원'(2016), '밀정'(2016), '7호실'(2017), '용순'(2017), '독전'(2018) 등에 이르는 14년간의 영화 출연 목록들. 그리고 '달콤한 나의 도시'(2008), '솔약국집 아들들'(2009), '가시나무새'(2011), '혼술남녀'(2016), '터널'(2017), '리턴'(2018), '작은 신의 아이들'(2018)이라는 10년간의 드라마 출연의 목록들. 주연·조연·단역 가리지 않고 찍은 영화가 그간 25편, 드라마는 7편이다. 어느 모로 보나 중견 배우 필모그래피 정도는 된다.

그럼 그는 누구이길래. 1988년 서울 왕십리 태생. 한국 나이로 서른한 살. 이름은 김동영. 이름만 들어서는 다소간 낯설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여명기부터 그간 출연해온 저 길디 긴 목록들을 되새긴다면,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작품군에다 그의 얼굴을 천천히 대입시켜본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대중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으나 김동영은 비슷한 연배들 중에선 가장 다작한 배우다. 쟁쟁한 배우들과 가장 왕성히 활동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찌감치 이 길로 뛰어들었고, 기복 없이 저만의 연기 지평을 확장 중이다. 지난해 '용순'에서 순정남 고교생으로 분했다면, 최근 이해영 감독의 '독전'에서 미스터리한 농아 남매를 호연했다.

그리하여 서울 충무로에서 만난 그에게 이 같은 물음부터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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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에서 김동영은 젊은 독립운동가 허철주로 분했다.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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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비해 경력이 오래됐어요.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무 생각 안 드는데요….

근래 본 배우를 통틀어 가장 단답형이었다. 처음엔 다소 난감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흥미로워졌다. 연기에 관한 얘기라면 가급적 말을 아꼈는데, 이유는 "쑥스럽고 민망해서." 그럼에도, 학창시절 얘기는 스스럼없이 곧잘 털어놓곤 했다.

-21세기 초입부터 상당히 많은 영화들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데.

▷그냥, 운이 좋았다고밖에요.

-고교생 때부터 최민식 배우님 같은 입지전적인 분들과 함께 하셨고요.

▷그건 그런데, 워낙 어렸으니까. 그땐 진짜 아무 생각 없이 했어요.

-데뷔 19년차이시죠. '내 마음의 풍금'(1999) 단역으로 처음 연기를 한 걸로 알아요. 그때가 무려 12세였어요.

▷에이, 그건 빼도 돼요. 엄마 때문에 억지로 한 거예요. 무더기로 나온 학생 중 한 명이었어요. 그때 연기학원 2년 정도 다녔어요. 실제론 노느라 거의 빠졌지만.

-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데뷔작이 뭡니까.

▷'꽃피는 봄이 오면'(2004). '아, 연기가 이런 건가' 하고 처음 느꼈어요. 연기도 재밌는데 사람 만나는 게 더 재밌었죠.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니 진짜 잘하는 줄 알았고요. 이 영화는 중학교 3학년에서 고교 1학년 넘어가던 즈음에 찍었어요. 당시 회사도 매니저도 없었어요. 촬영장이 어떤 곳인지, 제작부, 연출부가 뭘 하는지에 대해서도 개념 자체가 없었죠. 이 영화 찍으면서 조금은 알게 됐어요. 색소폰 부는 친구(색소폰 주자 용석 역)였는데, 혼자 촬영장 간다고 청량리역에서 강원도 도계역까지 내려가고 그랬어요. 제가 외동이에요.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 누비는 게 좋더라고요.

-같은 해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주인공 현수(권상우) 어린 시절로 나왔죠.

▷잠깐 나왔잖아요. 그건 딱 하루 찍었어요.

잠시 샛길로 빠지면,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칠 경우 고향이 전라도 광주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 왕십리 부근. 현재 지내는 곳은 서울 석촌호수 쪽이다. "광주는 할머니 댁이 있던 곳"이라 했다. "유치원 때 잠깐 내려가 1년 정도 지냈어요. 어머니가 당시 일이 좀 있으셔서…." 사춘기 시절, 부모님은 일찍이 이혼했다. 엄마는 아빠가 "미국에 갔다"고 둘러댔지만, 예민한 아들은 금세 낌새를 챘다. 그때 나이 열네 살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혼내는 사람이 집에 없어서 되레 편하고 자유로웠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어머니가 연기를 권한 걸로 알아요. 하필 연기였던 이유가 뭔가요.

▷자꾸 쏘다니다가 다쳐오니까. 지금도 그런데 제가 야구를 엄청 좋아했어요. 매일 이곳저곳 까지고 멍들고 와서 그게 싫으셨나봐요. 공부는 딱 봐도 안 할 놈이고, 연기라도 배워봐라 하신 거죠. 초등학교 때 교실에 '소년한국일보'가 책상에 쫙 깔리곤 했어요. 저는 만화만 보고 버렸죠. 그런데 한 번은 엄마가 거기 나온 연기학원 광고를 본 건지 다녀보라 하시대요.

-연기학원은 어떻던가요.

▷정말 가기 싫었어요. 딱 봐도 끼 있는 친구들만 있대요. 그 연기 교재랄까요. 작품들 대본이 신마다 적혀 있어요. 그걸 달달 외워야하는데 하고 싶었겠어요? 3학년때부터 2년 정도 다녔는데, 실제론 거의 땡땡이쳤죠. 엄청 맞았어요, 엄마한테. 학원이 여의도에 있는데 거길 혼자 오갔거든요. 안 그래도 가기 싫은데 지하철 타고 가다가 자주 샛길로 빠졌죠.

-'꽃피는 봄이 오면' 오디션은 어떤 계기로?

▷한창 프라이드, K-1 같은 이종 격투기 붐이 일 때예요. 중3 겨울방학 때였나. 동네에 도장이 생긴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처음 생긴 이종격투기 도장이라는데. 아무튼 친구 한 놈이랑 거길 다녔어요. 그러다 엄마가 전에 제가 다니던 연기학원에 계신 분이랑 연락이 닿은 거죠. 에이전시를 새로 차렸는데 오디션을 본다고요. 하필 제 나이 또래 역할이 필요했나봐요.

-어머니가 사실상 매니저였네요.

▷하도 안 한다고, 안 한다고 하다가 그때 보러 간 거에요. 마침 오디션장이 옥수동이더라고요. 그날 신천에서 동대문 쇼핑몰에 가려 했어요. 301번 버스 타고서였나. 옥수동을 거치더라고요. 잠깐 들렀다가 합류하려 했어요. 친구들한텐 "나 오디션 보고 갈게, 먼저 사고 있어" 했고요. 근데 끝나고 나와 버스를 타는데 "다시 좀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오대요. 근데 그땐 제가 참 개념이 없는 게…. 귀찮았어요.

-그래서 갔어요?

▷싫다고 그랬죠. 돈 없다고, 교통비 없다고요. 그러니 택시타고 오라는 거예요, 택시비 준다고. 그래서 다시 갔죠. 그러고 캐스팅됐어요.

오디션을 본 건 작은 사무실 원형 테이블에서였다. 배우 최민식부터 감독과 피디, 스태프 전원이 모인 자리였다. 주눅 같은 건 애초에 들지 않았다. 이미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고, "빨리 끝내자"는 생각뿐이었다. 딱 봐도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년. "최민식 선생님이 그땐 어떤 분인지도 잘 몰랐다"는 그다. 그렇게 대본은 주어졌고 "껄렁껄렁 굉장히 성의 없이" 읽어나갔다. 평소 친구들에게 하던 퉁명스러운 말투 그대로였다. 근데, 그러고 나니 테이블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반응이 좋았나 보네요.

▷뭔 의미인지 몰랐어요. 절 보고 웃으니 되레 기분이 좀 나쁘더라고요. 읽어봐라 해서 그냥 읽은 게 다였어요. 다시 생각해도 진짜 성의 없게요. 근데 어른들 시선에서 보았을 때 (연기를) 제대로 배운 애가 아닌, 그 날것 그대로 느낌이 썩 괜찮았나봐요.

-무슨 코멘트를 주시던가요?

▷최민식 선생님이 "너 어디서 노냐"고 하시대요. 그래서 "신천이요" 했죠. 그러니 "신천 양아치구만" 하면서 껄껄 웃으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제작팀에서 끝나고 다시 불렀고, 본의 아니게 캐스팅까지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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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은 영화 `7호실`에 서 조선족 DVD 아르바이트생 한욱을 연기했다. /사진제공=롯데인터테인먼트


-2003년이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등이 나온 한국영화계로서는 기념비적인 해였죠. 최 배우님의 아우라 같은 건 안 느껴졌어요? 굉장히 긴장했을 법한데, 안 그랬다니.

▷선생님 존재는 알았죠. 근데 그렇게 대단한 분이신 줄은…. 원채 영화를 잘 안 봤던 때였어요. 그런 절 보고 '이것 봐라' 하신 거 같아요. 최 선생님이 '꽃피는 봄이 오면' 촬영 중간에 며칠 안 나오신 적이 있어요. '올드보이'가 그때 칸에 출품됐거든요. 심사위원대상까지 받아오셨는데, 그때 저는 그게 그리 대단한 건지도 몰랐어요. 나중에 가서야 굉장한 상이라는 걸 알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해요. 그 나이에 선생님 같은 분과 작업을 했다는 게.

-모쪼록, 그러고 나서 쇼핑은 잘 했나요?

▷그럼요, 신발도 사고 옷도 사고. 당시 양재킷이 유행이었나. 동네 친구들이랑 동대문 밀리오레 가는 게 일종의 행사였어요. 큰마음 먹고 갔던 거죠.

-친구들이 하나같이 자유분방했을 것 같네요.

▷무리가 10명 정도 돼요. 절반은 초등학교, 절반은 중학교(배명중) 때부터 어울려 지금도 두루두루 친하죠. 예전엔 자주 만나 술 먹고 그랬는데, 요즘은 직장 다니고, 결혼한 녀석도 있고 해서…. 아, 이번에 또 한 명이 결혼한다네요.

-혹시 비행청소년은 아니었어요?

▷아니요, 선생님들이랑 되게 재미있게 잘 지냈는데요. 공부는 안 했죠. 근데 중학교 땐 벼락치기가 통해서 암기만 잘하면 평균 70점은 받았어요. 고교때는 그게 안 통했죠. 촬영 일정이 있으면 한 열흘 동안도 학교 못 나가니까. 근데도 저보다 성적 안 좋은 녀석들도 있긴 했어요. 언제부터인가 3번만 찍었는데, 그러고 나니 꼴등은 면하더라고요. 어설프게 찍으면 정답만 피해가는데, 3번만 찍으면 5분의 1은 맞잖아요.

-학교 생활과 연기 생활을 병행한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학교 입장에선 마뜩지 않아 했을 것 같기도.

▷처음엔 별로 안 좋아하죠. 촬영장에 있으면 선생님이 연락을 주시곤 했어요. "시험날인데 오늘 오니?" "못 가요" "그래" 이런 식이죠. '꽃피는 봄이 오면' 찍을 땐 배역 때문에 머리가 길었어요. 갈색으로 물들인 상태였고요. 당시 제가 집이 좀 멀어서 버스타고 매일 통학을 했어요. 근데 버스에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해요. 무조건 버스는 앉아서 가야한다는 고집 같은 게 있어서. 그래서 한번은 일부러 빈 버스 기다리다가 굉장히 늦게 등교한 적이 있는데요. 그날 옷차림이 머리는 길고, 물들였고, 신발은 컨버스 올스타, 가방은 옆으로 멘 채고. 각이 나오죠. 그런데도 그냥 운동장 가로질러서 중앙현관까지 쭉 갔어요. 그러다 교장선생님을 마주쳤죠.

-배짱 좋은데요, 보통이라면 안 들키려고 몰래 돌아가거나 그럴 텐데 정중앙으로 직진했다니.

▷순전히 물리적인 이유 때문이었어요. 뱅 돌아가면 많이 걸어야 하니까. 아무튼 교장선생님이 "너 누구야" 하시더라고요. "1학년 5반 김동영인데요"라고 하니, "뭐하는 놈이냐"고 그러셔요. "저, 지금 영화 찍는 게 있어서요"라고 했죠. 그러니까 "우리 학교는 그런 애 안받는다"는 거예요. 어쩌겠어요, "전학보내주세요" 했죠.

-실제로 전학간 건 아니죠?

▷그날 담임 선생님 불려가고, 어머니도 학교로 소환되고, 골치아팠죠. 근데 다행히 교장 선생님이 그해 바뀌었고요. 영화가 개봉하고 나니 주변에서 태도가 전혀 달라지더라고요. 포스터에도 제 얼굴이 후미에 나오고, 시내 버스 정가운데 영화 포스터 붙여져 있고 그러니까. 그리고 제가 원래는 짧은 머리를 좋아해요. 촬영 끝나고 나서 다시 빡빡 잘랐죠. 선생님들이 그때부터 모범생 같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므로 으스댈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권위에 움츠러들지 않고, 언제나 당당했지만 남들보다 위에 서 있다는 느낌만큼은 저어했다. 체질이었다. "누가 나를 배우로 소개하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 했다. "혹시나 친구가 다른 친구한테 그런 말이라도 하면 진짜 불같이 화냈어요. 일단 쑥스러웠고, 우쭐대고 싶지 않았어요. 최대한 연기 일 한다고 주변에 안 알리고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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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우지 않는 성격이군요.

▷뭐랄까, 그냥 조용히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반면에 딱 봐도 노골적으로 '욕망'이 감지되는 사람들,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그런 분들한테는 정이 안 가요.

-말씀하신 그런 자세가 일찍이 배우 생활하는 데 큰 보탬이 됐을 것 같아요. 나이 많은 선배 영화인들과 쭉 활동해야 했을 테니 더더욱.

▷제가 말수가 좀 없어요. 형들, 누나들, 어른들과 쭉 지내다보니 그분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익힌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소속된 회사가 없고 매니저도 없고 나이는 제일 어리고. 그런 저를 주변에서 엄청 챙겨주셨는데, 그런 걸 당연시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빠릿빠릿하게 잘 하려고 했어요. 아, 근데 제가 형들한테 너무 신났던 게 있는데, 이런 말 해도 되려나. 술 담배 같이 할 수 있는 형님들이 주변에 있다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어요. 김종관 감독님 오디션을 처음 보러 갈 때였어요. 친구 오토바이 타고 경복궁역 인근 오디션장에서 내렸죠. 그날 감독님, 조감독님이 잠시 담배피러 나가시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저도 따라갔어요. 그러곤 "저도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했죠. 얼마전 김종관 감독님을 만났는데, 그러시더라고요. "동영이 얘, 어릴 때부터 이랬어." 이런 걸 빼면 그래도 선은 잘 지켰어요.

-그 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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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딱 봐도 '나댄다'는 느낌, 그런 걸 워낙 싫어해서 절대 안 그러거든요. 쓸데없는 농담이나 질문 같은 거 안 해요. 먼저 말을 잘 안 하기도 하고요. 대신에 행동으로 보여드려요. 선배님들이 뭐가 필요하신 것 같다, 그러면 조심스레 가서 "물 필요하세요?" 묻는다던지. 그럼 "어, 갖다주면 좋지" 하시거든요. 말하자면 물밑에서만 행동한달까요. 눈치밥으로 일해왔던 것 같아요.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 건 잘해요.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혹여 내가 기분 나쁘게 해드린 건 없나 이런 눈치를 굉장히 보거든요.

-당시 고교생이다보니 아무래도 주인공의 어린 시절 또는 과묵한 외톨이 학생, 반항기 있는 청소년 역할이 많아요. 현장에서 제일 어리니까 실제로 많이 혼나고 꾸지람 듣고 그랬을 것 같은데.

▷아뇨, 혼난 적 거의 없어요. 크게 혼났으면 뇌리에 남아 있겠죠. 그냥 제 주장을 별로 안 내세워요. 감독님이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고요. 촬영 들어갔을 때에는 최대한 집중하고요.

그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아니, '안' 갔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다. 10대 후반부터 마주한 영화 촬영 현장은 그 자체로 커다란 배움의 터전이었다. 세트장, 로케이션 현장 곳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그때그때 모여 가르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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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이던 2006년에 '사랑을 놓치다' '눈부신 하루' '여교수 은밀한 매력' '가족의 탄생' '짝패' '마음이...'에 출연했죠. 그중 류승완 감독님이 직접 찍고 출연까지 하신 '짝패'를 보면, 여기서도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처럼 이범수 배우님이 연기한 장필호 어린시절로 나왔었죠. 훨씬 위 연배 선배들과 그 나이에 함께 연기할 수 있었다는 건 실로 엄청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10대 필호였죠. 배우들 중에 제일 막내였어요. 되게 건성건성 건들건들한 느낌으로 했던 것 같은데, 류 감독님이 그런 모습이 흡족하셨나봐요. 돌이켜보면 매 작품 함께 출연하신 선배님들마다 특징과 매력이 있으시더라고요. 그걸 통해서 얻는 무언가가 없진 않았겠죠. 그런데 그걸 다 닮긴 힘들고, 그냥 현장을 제일 일찍 나가서 최대한 어깨너머로 배워보려고 했어요. 제가 대학을 안 간 대신 현장 경험을 오래 했잖아요. 결과적으로 그런 게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아서 나이에 맞지 않은 큰 배역도 받고 그랬는데, 대학교 다녔으면 그게 가능했을까 싶어요.

-그러고 보면 군대생활도 잘 했겠네요.

▷제가 2011년 군번이에요. '완득이'(전교 1등 혁주를 연기했다) 찍고 입대했죠. 부산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운전병 신청했어요. 그러고 경산 제2야수교 가서 교육받았죠. 자대는 전북 남원이었어요. 일병달자마자 1호차 운전병을 했는데, 상관한테 불편함 '1'도 끼쳐드리면 안 된다 싶어 눈치껏 최선을 다 했어요.

-배우라는 걸 많이들 알아보죠?

▷그렇죠, 처음에 자대 배치받고 인사과에 앉아 있는데 대위님이 저를 계속 쳐다보는 거예요. 티 안 내고 가만히 앉아 있었죠. 그러다 "연기하는 친구 아니냐"고 묻길래, 대답 안 했어요. 그러니까 '굿바이 보이'(2011·신문배급소에서 일하는 거친 소년 창근 역이었다. 중학생 진우에게 담배와 술, 여자 다루는 법 등을 알려주는 독고다이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봤다면서 "맞지 맞지" 추궁하길래 결국 "맞습니다" 했었죠. 그렇게 알아보는 시선이 안 내키더라고요. 내무반 TV에서 특선영화 같은 거 할 때 혹여 제가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렸어요. 그러곤 말했죠. "얘들아, 전투체육하자!"

-썩 좋은 선임은 아니었네요.

▷아니, 운동시켜준다는데 얼마나 생산적이고 좋아요. 그리고, TV로 제 얼굴 나오는 거 보고 주변에서 웃는 게 싫어요. 어릴 때부터 늘 그랬어요. 누가 "배우냐?"고 물어보면 반사적으로 "아닌데요" 하죠. 사실 맞다고 그래도 제 이름까지 아시는 분은 별로 없거든요.

선후배 영화인들과의 쌓아온 끈끈한 인연은 전역 후에도 오롯이 이어진다. 실상 공백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곧바로 찍은 게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2013). 주어진 배역은 수사팀 막내 도형사였다. 아직 군기가 덜 빠진 그에게 그야말로 최적격의 캐릭터였다. "기합 팍 들어가 있고 빠릿빠릿하잖아요. 이거 찍고부터 형사 배역도 곧잘 들어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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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독전`에서 김동영은 주인공 락(류준열)의 친구인 농아 남매를 열연했다.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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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그에게 이른바 도약의 해였다. '위대한 소원'의 불량학생 남준('완득이' 혁주와 달리 전교 꼴등이다)으로 상업영화 첫 주연을 찍더니, 같은 해 '밀정'에서 젊은 독립운동가 허출주로 분한다. '밀정'은 750만명을 모으며 그의 출연작 중 가장 크게 흥행한 영화다. 그는 "중국에서 찍을 때 촬영분이 없어도 매일 현장에 나갔다"며 "송강호 선배님(정출 역)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배움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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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순`에서 김동영은 주인공 용순(이수경)을 짝사랑하는 고교생을 연기했다. /사진제공=롯데인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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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서의 활약도 본격화된다. '혼술남녀'에서 실감나게 노량진 공시생 연기를 선보였고, 올 초 종영한 두 편의 드라마에선 사이코패스 살인마('작은 신의 아이들'), 붙임성 좋은 강력계 형사('리턴')로 나와 호연했다.

-배우님 연기를 보면 뭐랄까, 크게 튀지는 않는 것 같아요. 대신 어디에 갖다놔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달까요.

▷제가 추구하는 게 '티 안나는 연기'거든요. 다른 연기를 봐도 연기라는 게 느껴지면 몰입이 금방 깨지더라고요. 평소 저의 모습과 크게 어긋나지 않게 하려고 하는데, 저랑 좀 다르다싶으면 지인들을 하나 하나 대입해봐요. 특히 어릴 때부터 어울리던 열댓 명 친구들을 대입시켜보면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아, 이 캐릭터는 얘랑 비슷하네, 이러면 그 친구의 느낌대로 가보는 거죠. 물론 100% 구현해내진 못하겠지만.

-그간 한 번쯤 연기가 지겨웠던 적은 없나요? 고비가 있었다거나. 애초에 엄청난 목표의식을 갖고 출발한 건 아니었으니.

▷전혀요, 예나 지금이나 재밌어요. 사람 냄새나는 현장 그 자체가 여전히 좋고요. 아, 하기 싫은 적이 있기는 하죠. 너무 춥거나 더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아, 김동영이라는 배우는 길고 넓게 보는 배우인 것 같다. 주어진 위치에서 조금은 느리더라도 천천히 멀리 보고 나아가는 것 같다.

▷크게 욕심 안 내려고요. 급하고 초조해지면 저만 스트레스 받고 힘들거든요. 작품이 잘 되든 못 되든 그건 본인의 운이라고 생각하려고요. 그리고, 대부분 조연 위주로 출연해왔는데, 웬만하면 제가 맞추고 따라가려고요. 감독님이나 선배 배우들 얘기 귀담아듣고, 제가 생각한 게 있어도 그분들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드리고요. 튀고 싶지 않거든요. 조연으로서 보여지는 신이 있을 거니까 거기에 집중하려고 해요. 주연 분들이 있는데 제가 방방 뛰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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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궁금해지기도 해요. 그럼에도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욕망은 배우로선 본능일 테니까. 이를테면 '위대한 소원'에 함께 출연한 안재홍 배우나 이번에 '독전' 주인공인 류준열 배우 같은 경우엔 비슷한 연배인데 '응답하라 1988' 이래 스타로 떠올랐잖아요. 의식이 안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그건 정말로 모르는 거잖아요. 대중들의 마음을 저희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저 같은 배우는 꾸준히 연기하는 것 밖에 없어요. 스트레스 받고 조급해하면 본인만 손해예요.

한 손에는 겸손을, 다른 한 손에는 자신감을 쥐라는 말이 있다. 전자가 없는 후자는 오만함일 것이고, 후자가 없는 전자는 비굴함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 김동영은 양자를 모두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겸손이 지나치지도, 자신감이 넘쳐흐르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부러 멋 부리지 않아도, 그가 멋진 남자인 것은.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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