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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흑백이어야 돈 된다"…판매량 좌우하는 `자동차 색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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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출처=현대차, 기아차, 르노삼성차, 한국지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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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車-94] 휴가철이나 명절 연휴 때 방송사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내려다본 도로 풍경은 '흑백'이다. TV는 흑백에서 벗어나 컬러로 넘어온 뒤 HD·풀HD를 지나 자연색에 가까운 뛰어난 화질을 제공하는 UHD·8K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도로 풍경을 볼 때만큼은 흑백 TV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간혹 빨간색·노란색·파란색 버스나 승합차가 보이고 빨간색 리어램프가 '컬러감'을 살려주지만 흰색, 회색, 검은색과 같은 무채색으로 칠해진 자동차들 때문에 금방 묻혀 버린다. 무채색이 자동차 세상을 점령했다.

요즘 나온 차들은 색감이 다양해져 흑백만 대접받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여전히 무채색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기업인 엑솔타(AXALTA) 코팅 시스템즈가 발표한 '2017 글로벌 인기 색상 보고서'에 따르면 흰색이 7년 연속 인기 색상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흰색 점유율은 39%에 달했다. 검은색은 16%로 2위, 회색과 은색은 각각 11%로 공동 3위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색상은 흰색으로 점유율이 32%로 조사됐다. 회색은 19%, 검은색은 14%, 은색은 12%로 뒤를 이었다.

현대자동차 색상별 점유율 조사에서도 무채색 강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판매된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등 주력 차종에서 무채색 점유율은 90%를 넘었다.

르노삼성자동차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판매된 SM6 10대 중 9대가 무채색으로 칠해졌다. 회색이 33%로 가장 높았고 흰색이 32%, 검은색이 20%, 은색이 6%로 뒤를 이었다. 무채색에 넣을 수 있는 자줏빛 검정까지 포함하면 무채색 점유율은 98%에 달했다.

한국GM '쉐보레 말리부'에서도 무채색 점유율이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팔린 말리부의 색상별 점유율을 살펴보면 흰색 37.9%, 검은색 26.2%, 회색 21.8%, 은색이 2.1%로 조사됐다. 무채색 점유율은 88%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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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시장 /사진출처=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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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시장에서도 무채색이 대세였다. 자동차 오픈마켓인 SK엔카닷컴이 지난해 4월 홈페이지에 등록된 중고차 33만대를 색상별로 분석한 결과, 10대 중 9대 이상이 무채색으로 나타났다.

차종별 무채색 비중을 살펴보면 대형차가 98.3%로 가장 높았다. 중형차는 96.7%, 준중형차는 93.4%, SUV는 92.2% 순이었다. 경차는 77.3%로 조사 차종 가운데 무채색의 비중이 가장 낮았다.

색상별로는 흰색이 36.9%로 가장 많았고 검은색이 26.7%, 은색이 20.2%로 뒤를 이었다. 준중형차의 경우 흰색 점유율이 46.7%에 달했다. 대형차에서는 검은색 점유율이 57.5%로 가장 높았다. 흰색은 20.1%로 그다음이었다.

색상별 평균 판매기간 조사에서는 흰색이 34.6일로 가장 짧았다. 그만큼 수요가 많아 빨리 팔렸다는 뜻이다. 회색은 37.1일, 검은색은 37.7일로 나왔다.

실제 중고차시장에서도 무채색이 대접받고, 유채색은 홀대 받는다. 개성에 맞춰 판매하기 힘든 중고차의 특성상 무난한 게 좋기 때문이다.

색상은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딜러들은 어울리지 않는 색상으로 칠해진 자동차를 문제가 있는 차라는 뜻에서 '하자'라고 부른다. 하자 색상을 지닌 중고차는 수요가 적다 보니 무난한 색상의 차보다 5% 정도 저렴한 값에 거래된다.

이처럼 무채색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화려한 유채색보다 무난해 쉽게 질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사실 차는 한번 사면 길게는 10년 넘게 타기 때문에 질리지 않는 색상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무채색 중 흰색은 차를 깔끔하면서도 더 크게 보이는 효과를 지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흰색 선호도가 높은 이유를 '애플 효과'에서 찾기도 한다. 흰색은 종전에는 냉장고나 화장실 타일 등과 연결됐지만 애플이 흰색을 제품에 많이 사용한 뒤 훨씬 가치 있는 색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은색이나 회색은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 튀지 않고 외관 디자인도 돋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디자인이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트렌드에 알맞다. 검은색은 안정감, 강직함, 무게감, 중후함 등의 이미지를 지녀 대형차 구매자들이 선호한다.

한국 소비자들이 무채색을 좋아하는 이유를 성향에서 찾기도 한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흰색은 민족성을 대표하는 색상이다. 은색은 때가 잘 타지 않아 관리하기 쉽고 튀지 않아 무난한 데다 차분한 느낌도 줘 나서기를 싫어하는 한국인들이 좋아한다는 말도 있다.

검은색은 옛날부터 흰색과 함께 한국인에게 익숙한 색상이고 중후한 이미지를 지녀 대형차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차량 크기가 커질수록 선호 색상은 흰색 계열에서 검은색 계열로 옮겨간다.

무채색 선호가 심해진 이유는 신차 판매 전략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차 영업사원들이 색 종류가 다양하고 호불호도 심한 유채색 차와 달리 무채색 차는 종류가 적고 판매도 원활하다고 판단해 미리 주문해둔 무채색 차를 구매하도록 유도한 게 무채색 선호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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