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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겨레>가 선정한 ‘한국영화 30년(1988~2018년·개봉 기준)을 대표하는 30편’의 1위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다. 추천위원 33명 중 25명의 지지를 받았다. <살인의 추억>은 한국영화 걸작을 꼽을 때마다 1위 자리를 놓치는 일이 거의 없는 작품이다. 1980년대 실제로 벌어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 삼아 한국형 스릴러 장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범인이 검거되지 않는 스릴러의 새로운 문법으로 한국형 장르를 완성했다”고 평했다. 80년대의 부조리한 한국 사회를 풍자한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맹수진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장르의 규칙을 무화시키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서늘한 영화”라고 평했다. 봉 감독은 이 영화 말고도 <괴물>(8위), <마더>(18위)를 30위 안에 올렸다.
“한국형 스릴러의 완성”
봉준호 감독 작품 1위 꼽혀
전통소재 대중화 보여준 ‘서편제’
전혀 다른 멜로 ‘8월의 크리스마스’
아픈 현대사 들춘 ‘박하사탕’ ‘송환’
최초 칸 심사위원대상 ‘올드보이’
충무로에 신선한 충격 던진
홍상수·장준환 데뷔작도 30선에
2위는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다. 20명의 표를 얻었다.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한국영화계는 말 그대로 ‘아찔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송형국 영화평론가는 “이날 이후 한국영화는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예술이 내놓을 수 있는 답변 중 하나를 홍상수를 통해 들을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홍 감독은 이후 내놓은 작품들마다 칸, 베네치아(베니스)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비상한 주목을 받는 감독이 됐다. 그의 많은 영화들에 지지가 분산된 가운데, 강렬한 데뷔작에 표가 집중적으로 몰렸다.
3위는 <서편제>(1993)와 <8월의 크리스마스>(1998)가 차지했다. 거장 임권택 감독이 판소리를 소재 삼아 만든 <서편제>는 오랫동안 대중문화가 외면해온 전통문화를 전면에 내세워 단관 개봉 시절 당시 서울 관객만 100만을 돌파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수남 더타워픽쳐스 대표는 “한국적 소재 대중영화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는 90년대 중반에 도래한 한국영화 르네상스기에 활짝 핀 새로운 멜로드라마다. 특별한 사건이나 격렬한 감정선 없이 한석규, 심은하의 시종 담담한 연기가 신선했던 이 영화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다시 쓴 영화”(맹수진), “일상에서 특별함을 길어낸 연출, 그에 부합하는 촬영과 어깨에 힘을 뺀 연기, 그 삼박자가 빚어낸 멜로영화의 걸작”(허남웅)이라는 평을 받는다.
한국사회는 어떤 장면으로 기억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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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는 <박하사탕>(2000), <올드보이>(2003), <지구를 지켜라!>(2003)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형식으로 우리 비극적 현대사를 꿰뚫은 영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가닿으면서 국가 폭력이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아프게 보여준다.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시>(13위), <밀양>(15위), <초록물고기>(18위)까지 이 감독의 거의 모든 연출작이 30편 안에 들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2004년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박 감독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올드보이>는 2013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박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10위),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16위), <아가씨>(23위)로도 3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는 기괴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어쩌면 한국영화 제작 환경에서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상상과 실험”(송형국),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상상력을 한국영화가 확보한 기념비적 순간”(허남웅)이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열광과는 다르게 흥행에서는 참패했다. 이 때문에 맹수진 프로그래머 말마따나 “저주받은 걸작 넘버원”으로 회자된다. 장 감독은 오랫동안 잠잠하다 10년 뒤에야 두번째 작품 <화이: 괴물이 된 아이>(2013)를 내놨다.
8위는 <송환>(2004)과 <괴물>(2006)이다. 12년에 걸쳐 비전향 장기수를 기록한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에 대해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분단과 대립이라는 첨예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절절했던 작품”이라 평했다.
<괴물>은 봉준호 감독이 “고등학교 시절 잠실대교 교각을 기어오르는 이상한 괴생물체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기억에서 출발한 영화다. 한강에 괴물이 산다는 상상력에다, 발전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접목해 괴수 영화의 불모지였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장르를 우뚝 세웠다. 장르적 공식에 날카로운 현실 비판을 접목하는 봉준호의 ‘인장’을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수남 대표는 “뛰어난 상상력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컴퓨터그래픽 기반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고 평가했다.
10위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복수는 나의 것>(2002), <곡성>(2016)이다.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안성기와 박중훈이 서로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장면,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가 흐르는 계단 살인 장면 등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의 시작으로, “박찬욱 월드의 진정한 출발”(허남웅)이라 불린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다양하게 열린 해석으로 사회적 신드롬까지 일으킨 공포·스릴러 영화다. 허지웅 영화평론가는 “천재적인 악몽”이라는 짧은 평으로 영화의 가치를 집약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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