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착시는 교육 분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독일 연방통계청에서도 근무했던 통계학자 게르트 보스바흐 박사가 한 토론회에서 겪은 사례다. 독일에서 사회적 위기로 논의되고 있는 인구문제 및 교육정책에 대한 토론회였는데 당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가족부 장관은 주정부에서 신규 교사 1000명을 채용했다고 자랑스레 발표했다. 그러자 보스바흐 박사는 베스트팔렌주에는 학교가 몇 개나 되느냐는 질문했고 당황한 장관이 우물쭈물하자 다른 교수가 공립학교만 7000개쯤 된다고 말해주는 순간 장내 분위기는 싸늘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무려 1000명이나 되는 교사를 채용’한 것이 아니라 ‘7곳의 학교 중 1곳만 신규 교사를 채용했다’는 의미였으니 장관은 통계 숫자로 공공연히 사람들을 속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한 교육전문가는 “서울대 정시는 100% 수능으로 선발해요. 근데 정시에서는 일반고 출신 합격자가 59.3%예요. 반면에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합격자는 39.2%입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수능이 일반고에 더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는 걸까요?”라고 인터뷰했다. 실제 2018학년도 서울대 정시 입시에서 일반고 출신은 510명이 합격했고 특목고와 자사고에서는 불과 337명이 합격했으니 이 숫자만 보면 일반고가 수능전형에서도 월등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맞다. 그런데 이 주장을 알게 된 몇몇 고등학생들이 자료를 찾아보더니 이런 반박 논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반고 학생은 119만3562명이고 특목고는 6만7960명, 자율고는 13만3896명이다. 일반고 학생 수가 특목고와 자율고 학생 수의 여섯 배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반고의 수능 경쟁력이 특목고와 자사고에 비해서 크게 떨어진다고 보아야 하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정시전형 합격자들 중에서 강남·서초·송파 3구 출신이 무려 169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나마 교육특구 지역을 제외한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수능으로 최상위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고등학생들도 쉽게 찾아내는 수능시험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통계자료들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왜곡된 통계자료와 감성적 논리를 통해서 구성된 주장들이 정부나 국회에서 입시정책을 세우고 법안을 심의하는데 영향을 줄 때 생기게 될 문제를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하다. 물론 정부와 교육청, 정치권이 일반고 교육동아리 학생들보다 나은 판단을 해 줄 것을 기대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다.
※참고 자료 독일사례: 게르트 보스바흐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교육전문가 인터뷰: 이기정 <입시의 몰락>, 통계청 e-나라지표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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