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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개성공단 ‘실버타임’ 남아 있다, 단 올해 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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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인터뷰…

“개성 연락사무소는 남북 함께하는 ‘연합적 거버넌스’ 맹아 될 것”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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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한다.”

남북 화해·교류의 ‘경전’으로 통하는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제7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흔히 ‘판문점 채널’이라 하는 판문점 연락사무소가 설치된 근거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판문점 채널은 쉽게도 막히곤 했다. 연락이 목적인 판문점 채널은 어느새 남과 북이 서로를 ‘처벌’하는 도구가 됐다.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 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 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인 ‘판문점 선언’ 제1조 3항이다. 문자 하나에 여러 뜻이 숨어 있다. 풀어보면 △당국 간 협의 △민간 교류·협력 보장 △남북 당국자 상주 △개성 지역 설치 등 네 가지가 눈에 띈다. 북쪽 지역 개성에 마련될 연락사무소에서, 당국 간 협의는 물론 경협을 포함한 민간 교류와 협력 확대를 위해,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날마다 머리를 맞댄다는 얘기다. 단순 연락 채널을 뛰어넘어, ‘남북 협치’의 시험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초보적인 형태지만, 비슷한 경험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문을 닫은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에서다. <한겨레21>이 지난 5월4일 오후 서울 마포의 사무실에서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연구자이자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 출신인 김 위원장은 2008년 2월부터 2011년 9월까지 개성공단에 상주하며 기업지원부장으로 일했다.

4·27 정상회담에 대한 소회가 남달랐을 텐데.

감격하고, 감동했다. 눈물이 나더라. 1·2차 정상회담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시작, 이제 더 이상은 뒤집어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다녀오자’며 두 정상이 장난처럼 군사분계선의 남과 북을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분단 체제도 저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당국 간 실무 접촉의 일상화

개성공단에서 3년8개월을 보낸 것으로 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기업지원부장으로 일했다. 공단에 입주한 남쪽 기업들이 어려움이 생기면 북쪽과 협의·협상해 문제를 풀어주는 몫이다. 애초에는 북쪽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체제로 운영됐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어그러지면서,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가 2010년 5·24 조치 직후 폐쇄됐다. 이어 2013년 공단이 6개월간 폐쇄된 이후엔 당국 간 기구인 개성공단남북공동위원회가 또 만들어졌지만, 별다른 역할은 하지 못했다.

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개성 지역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로 합의했는데.

남북이 함께하는 이른바 ‘연합적 거버넌스’의 맹아가 될 것으로 본다. 개성공단에서 얻은 경험이 있다. 서로 대화를 하다보면, 과거에 엄두도 못 냈던 일까지 실험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남북이 함께 근무하는 체제다. 남북 당국 간 실무 접촉이 일상화되는 것이니, 앞으로 남북관계도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새 연락사무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남북 사이의 모든 일상적인 교류·협력·경협은 물론 당국 대 당국 협력까지 다 조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선 통일부는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국가정보원 등에서도 인력을 파견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두 정상이 합의하지 않았나? 해야 할 일이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다. 평양과 서울에 남과 북이 상주대표부를 개설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남북 경제협력의 고도화로 이어질 것”

개성 지역에 연락사무소로 사용할 만한 공간이 있나.

개성공단 터 한가운데에 15층짜리 종합지원센터가 있다. 관리위원회도 거기 입주해 있었다. 경협사무소도 만들어놨고, 남북회담에 대비해 음향시설까지 갖춘 국제회의장도 마련해뒀다. 시설물을 보수해야겠지만, 보안도 확실하고 식당까지 갖추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개성 공단 입주기업들의 기대감도 클 것 같다.

그간 입주기업 가운데 27~28개 업체가 대체 공장을 찾아 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로 진출했다. 장기적으로 동남아 시장도 유지해야겠지만, 업주들이 공통으로 ‘동남아에 가보니, 개성공단이 얼마나 경쟁력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고 얘기하더라. 기업의 생존이란 측면에서 보면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하지만 ‘실버타임’은 올해 말까지다. 폐쇄 3년차가 되면 ‘바이어’도 정리되고, 버티던 기업도 쓰러지기 시작할 것이다. 올해를 넘기지 말고 반드시 문을 열어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도 탄력을 받을 텐데.

비핵화 선언, 종전 선언, 평화협정의 틀은 만들어졌다고 본다. 이후 과제는 ‘남북 경제협력의 고도화’로 이어질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완화·해제되면, 외국자본도 들어오지 않을까? 우리가 앞장서 준비해야 한다.

“평화를 일으키면 번영이 온다”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미 평화의 시대에 들어섰다. 평화를 일으키면 번영이 온다. 그 뒤에는 통일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앞세우고 ‘통일’은 뒤에 나오지 않나. 북한도 미국도 중국도 변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런 판세 변화를 제대로 읽으면 좋겠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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