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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1인가구 고독사 막는 초인종 소리...요구르트 아줌마의 '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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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11일 대구시 남구 대명3동 서정수 할머니 집에 요구르트 배달원 엄삼순씨가 찾아와 요구르트를 건넨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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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계세요? 요구르트 배달 왔어요~"

지난 11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3동 주택가. 요구르트 배달원 엄삼순(56·여)씨가 한 주택 문을 열어젖히며 집 주인을 불렀다. 엄씨의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나온 서정수(89) 할머니는 요구르트 한 통을 손에 받아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엄씨는 2006년부터 평일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 할머니 집을 찾는다. 단순히 요구르트 한 통을 배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서 할머니가 불편한 곳은 없는지, 필요한 일은 없는지 살펴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 사업은 남구 대명3동이 실시하고 있는 '굿모닝콜 프로젝트'다. 서 할머니처럼 혼자 살고 있는 대명3동 독거노인 80여 명을 대상으로 한다. 독거노인과 1인가구 고독사를 예방하고 은둔형 세대를 발굴하는 목적이다. 대구 남구와 지역사회보장협의체·바르게살기위원회·민간사회안전망 등 지역 시민단체, 한국야쿠르트가 힘을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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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대구시 남구 대명3동 서정수 할머니 집에 요구르트 배달원 엄삼순씨가 찾아와 요구르트를 건네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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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할머니는 "남편이 59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혼자 살고 있었는데 요구르트 배달원이 매일같이 집을 찾아주니 이제 딸처럼 반갑다"고 말했다. 엄씨는 "할머니가 이틀만 안 보여도 바로 이상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요구르트 배달뿐 아니라 할머니의 건강도 챙길 수 있어 보람차다"고 전했다.

최근 또 다시 복지 사각지대에서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에도 경북 구미시 봉곡동 원룸에서 함께 살던 20대 아버지와 16개월 아들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버지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었고, 아들은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상태여서 복지안전망에 들어오지 못했다.

구미시는 사건 직후 '사회적고립가구 안전망 확충 대책회의'를 열고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대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도 저소득 중·장년층에게 요구르트 배달 사업을 펼쳐 정기적인 안부 확인을 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원룸 소유주, 우체국 집배원, 가스·수도 검침원 등 민간 영역과의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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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르트 배달원, 가스·수도 검침원, 신문 배달원 등이 안부를 확인하는 사업은 고독사를 발견하고 예방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실제 2006년 서울시 서초구에서 요구르트 배달을 하는 임은순(54·여)씨는 한 노인이 사는 집에 요구르트가 방치되는 것을 보고 고독사를 발견했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서 활동하는 요구르트 배달원 전세옥(63·여)씨는 3번이나 독거노인을 구조했다. 2008년 12월 홀로 사는 할머니가 다리 골절상을 입고 집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2009년 6월과 2010년 2월에도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노인을 119에 신고했다.

앞서 한국야쿠르트는 1994년 서울시 광진구와 협약을 시작으로 독거노인에게 요구르트 배달을 하며 안부를 확인하는 '홀몸노인 돌봄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1104명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3만 명으로 대상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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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지 수개월 만에 발견된 충북 증평 모녀의 집 앞에 폴리스라인이 붙어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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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독사에 대한 대책 논의가 이제 시작 단계다. 하지만 한국보다 30년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배달원이나 검침원이 고독사 징후를 보다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일찌감치 신고를 의무화했다.

사업의 효과는 일본이 치바(千葉)현 마츠도(松戶)시에서 실시한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비상연락망을 재정비하고 지역 중·장년과 퇴직자가 교류할 수 있는 살롱을 개설했다. 특히 신문 보급소에서 배달할 때 집안을 확인하도록 했다. 이진아 부산가톨릭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마츠도시 50세 이상 시민의 고독사는 2003년 90명에서 2006년 72명으로 20% 줄었다.

구미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공무원만으로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한계가 있어 민간을 활용한 관리 기법을 적극 개발하고 복지 사각지대가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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