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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굴뚝일기] “힘내요, 미시타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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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홍기탁·박준호 씨 184일째 고공농성 중



한겨레

홍기탁씨가 빠진 가족 사진. 굴뚝집을 지키고 있는 홍기탁 씨 가족은 남편 혹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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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씨(41)는 아침 7시 고1 홍은솔, 중1 석범, 초등학교 6학년 이솔이를 깨운다. 오늘 아침상엔 잡곡밥과 콩나물국, 김치가 올랐다. 엄마가 차린 상 주위로 눈곱을 매단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았다.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후루룩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각자 등교 준비를 하고, 차례대로 집을 나선다.

그렇게 아이들이 집을 나선 뒤에야 비로소 정윤 씨는 자신의 출근을 준비할 수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세 남매의 돌봄은 오롯이 그녀의 몫. 간단한 집 정리와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출근 준비라고 해봐야 간단한 화장 정도다. 곱절은 바쁜 아침을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출근길에 오를 수 있다. 집 근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정윤 씨는 네 살 아이들 열 명을 보살핀다. 열 명의 아이들은 정윤 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아침 8시 30분, 어린이집에 도착해 교실을 정리하고 등원하는 아이들을 맞이한다. 참 고맙게도 정윤 씨가 돌보는 열 명의 아이들 모두 제법 의젓하다고 그녀가 말한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며 우는 아이들도,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부리는 아이들도 없다. 그리 순한 아이들이라도 열 명을 돌보기가 쉬운 일은 아닐 터. 하루 일과를 물었다.

아이들 손을 씻기고 간식을 먹인 뒤 장난감과 놀이도구를 활용해 교육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그녀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점심 식사를 돕느라 정작 자신의 식사는 제대로 챙길 수 없을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밥을 먹은 아이들이 낮잠이불에 몸을 누이면, 선생님은 서둘러 열 명 아이들의 하루를 정리해 저마다 가정으로 보낼 알림장을 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들이 오후 간식을 먹고 났을 때, 한 번, 두 번 귀가벨이 울리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나면 퇴근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막내 이솔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나 집 앞 주차장이야. 같이 올라가요.” “응, 그래”

그녀는 웃으며 막내를 ‘엄마 스토커’라 불렀지만, 모두 안다.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아빠 대신 엄마품이 더더욱 간절한 막내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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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홍기탁, 박준호씨는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 184일째 올라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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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이솔이가 좋아하는 그릇에 담은 볶음밥이다. 이솔이는 정윤 씨를 닮아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을 좋아한다. 저녁을 준비하려는 정윤 씨의 전화기가 울린다. 핸드폰 위로 ‘미시타홍’이란 글자가 뜬다. 남편 홍기탁씨의 전화다. 음성통화로 전화를 걸어온 걸 보니, 오늘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잖아. 정윤이가 주말에 부모님 좀 찾아뵈었으면 해서.” 어버이날이지만 부모님도 찾아가지 못하니, 주말에라도 인사를 드렸으면 한다는 말이다. 주로 영상통화를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남편은 음성전화를 걸어온다. 굴뚝 위 마음을 헤아리는 정윤 씨는 “알았어요”라고 답한다. 짐을 함께 나눠질 이는 부재해도 자식으로서, 또 부모로서의 도리는 고스란히 그녀의 몫으로 남아, 남편 없이 지내는 올해 5월은 더욱 만만치 않다.

이정윤 씨의 남편 홍기탁 씨는 박준호 씨와 함께 ‘스타플렉스 김세권이 약속한 민주노조 사수 3승계 이행, 노동악법 철폐, 독점재벌·국정원·자유한국당 해체’를 요구하며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 184일째 올라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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