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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야나체크에서 경복궁 타령까지… '실내악의 심장' 독일을 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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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통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에켈스하우젠 음악 축제서 연주

"오랫동안 분단돼 있던, 그러나 요즘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나라에서 온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를 환영합니다." 12일 오후 8시(현지 시각), 독일 헤센주(州)의 작은 마을 부케나우에서 우리 연주자 23인이 일제히 활을 빼 들었다. 날카롭게 내리그은 현 끝에서 피어오른 사운드는 청중들 가슴으로 파고들어 시원한 생채기를 남겼다. 야나체크의 '현(絃)을 위한 모음곡'이었다.

2년 뒤 창단 55주년을 맞는 KCO는 우리나라 클래식 역사에 드물게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린 민간 실내 악단이다. 김민(76)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이 1980년부터 음악감독을 맡고 있고, 뉴욕 카네기홀과 빈 무지크페라인을 이미 밟았다. 핀란드 난탈리 음악 축제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음악 축제 등 크고 작은 축제에서 130회 넘게 연주하며 해외 무대를 누볐다.

조선일보

12일 밤(현지 시각) 독일 에켈스하우젠 음악 축제에서 연주하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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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실내악의 심장'인 독일 마르부르크 일대에서 12일 개막한 에켈스하우젠 음악 축제에 섰다. 1987년 시작된 이 실내악 페스티벌은 규모는 작지만 바이올린 거장 기돈 크레머와 그가 이끄는 앙상블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여러 해 개막 공연을 함께해 내실 있는 음악 축제로 정평 나 있다. 그 자리에 올해는 KCO가 들어가 50년 저력을 뽐냈다.

공연장이 독특했다. 독일의 목욕용품 제조 기업 '로트'의 사옥 로비. 1~3층을 하나로 터서 통유리를 달아놓은 공간에 붉은색 의자 450개가 놓였다. 수국으로 장식한 단상이 무대의 전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에켈스하우젠은 평범한 주부로 살다 버려지는 종이가 아까워 종이 공예가로 변신한 안네마리 고트프리트(94) 여사가 63세에 시작한 '가족형 축제'이기 때문이다.

고트프리트 여사는 사재를 털어 인구 7만의 소도시 마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에켈스하우젠과 비덴코프, 부케나우 등 인근 마을을 돌며 클래식 연주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1990년 독일의 명(名)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64)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해 음악적 숨결을 불어넣었다. 베르거는 자신과 영적으로 교감하는 기돈 크레머와 비올리스트 노부코 이마이 등을 초청해 무대를 맡겼다. 대신 원칙이 있었다. "에켈스하우젠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작품을 연주해야 합니다."

첫 회 개막 공연은 고트프리트 여사가 구입한 300년 된 농가에서 열렸다. 벤츠 자동차 대리점에서 한 적도 있다. 30년 지난 지금도 공연은 교회와 시청 강당 등 여섯 군데에서 나뉘어 펼쳐진다. 고트프리트의 손녀로 축제 조직위원장을 맡은 마레일레 추헤어(37)씨는 "올해 예산은 9만6000유로(약 1억2200만원)인데, 그중 절반은 티켓 수입, 30%는 주정부와 지역 은행이 지원하고, 나머지 20%는 개인 후원금으로 충당한다"며 "축제 덕분에 5월이면 동네 호텔과 레스토랑이 인산인해"라고 했다.

KCO는 이날 베르거와 함께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 바이올리니스트 한나 바인마이스터와 함께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였다. 앙코르로 즐겨 연주하는 '경복궁 타령'에 이어 손가락으로 현을 뜯으며 리듬을 타는 조지 맘스텐의 곡을 들려주자 객석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기교도 완벽하지만 내면을 움직이는 힘은 근래 본 연주 중 KCO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든 독일인 겔트 달만씨의 말처럼 청중은 "브라보!"를 연발했다.







[에켈스하우젠(독일)=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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