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호·경제부 |
금융감독원이 11일 발표한 신한금융 채용비리 검사 결과에는 이름 모를 ‘금감원 직원’이 등장한다. 이 ‘금감원 직원’은 전직 고위 관료가 조카의 채용을 신한은행에 청탁하는 통로였다. 은행의 불법행위를 감시하라고 있는 금감원 직원이 불법 행위의 조력자로 나섰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금감원 차원에서 누군지 색출해 직무를 정지시킨 후 추가로 연루된 건이나 사람이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 이게 상식적인 감독이다.
금감원의 대응은 달랐다. 권창우 금감원 일반은행검사국장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단순하게 정황이 있다는 것이지,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이 아니다”라며 후속 조치를 검찰에 미뤘다. 해당 금감원 직원이 누군지, 심지어 은행을 감독하는 부서에 소속됐던 사람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앞서 KEB하나은행의 채용비리 검사에서 내부 청탁자의 성(姓)과 소속을 명시해 누군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태다. 금감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금감원의 이런 모순된 행태는 처음이 아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검사에서 금감원 직원의 연루 정황이 드러났을 때도 “청탁 대상인 지원자가 합격하지 않았다. 누군지 파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나온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검사 결과에서도 금감원 직원 2명이 청탁자로 포함돼 있지만, 금감원은 곧바로 조치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감사원 감사를 통해 채용 과정에서 일부 고위 간부들이 청탁을 받고 채용 기준을 임의로 변경하는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금감원이 임원을 교체하고 채용 전형에 블라인드 방식을 도입하는 등 쇄신책을 내놓긴 했다. 하지만 금감원 직원이 피감 기관인 민간 은행에 청탁한 정황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없다.
이달 취임한 윤석헌 금감원장은 ‘금융감독의 독립성 확보’를 강조했다. 윤 원장은 “신뢰가 떨어진 금감원이 뼈를 깎는 자성을 하지 않고 독립부터 주장하는 건 모순”이라는 금융계의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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