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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내가 너에게 빠진 이유,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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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동물과 대중문화

‘2030’ 사로잡은 시바견의 매력

세모 눈썹과 말랑말랑한 볼

카타르시스를 부르는 이름에

감정을 대변하는 다양한 표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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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견이 혀를 날름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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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찌’는 일본어로 떡이란 의미다. ‘모찌모찌’는 떡처럼 말랑말랑한 느낌의 음성이라 풀이할 수 있다. ‘카와이’는 일본어로 귀엽다는 뜻이다. 모찌(떡처럼 말랑말랑)하고 카와이(귀여운)한 일본 출신의 시바견의 인기가 국내에서도 뜨겁다. 배우 정유미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카페 운영하는 친구네 시바견 ‘탁구’는 연예인 대접을 받으며 카페 홍보에 일등 공신이 됐다. 시바견 인형과 시바견 그림이 그려진 생활용품 하나씩 있다는 ‘2030’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시바견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30대 중반의 한 직장인은 구글에서 다운로드받은 시바견의 다양한 표정 ‘짤’을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다닌다. 꽃 왕관을 쓴 시바,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시바, 그네를 타며 눈이 안 보이게 웃고 있는 시바, 깜짝 놀란 시바 등 기쁨·슬픔·짜증·분노·희열 등 갖가지 표정의 시바견 사진을 손으로 넘기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린다. 동료와 대화할 때 이모티콘을 보내는 대신 표정이 살아있는 시바견 사진을 전송하기도 한다. 그는 지난해 가을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에서 품절 대란을 부른 5천 원짜리 ‘모찌 시바 이누(시바견) 인형’을 사기 위해 한 계절을 기다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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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석 작가는 ‘찌바’가 킥보드를 타고 가는 이 모습이 가장 귀엽다고 했다.최동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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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석(동동·23)씨는 시바견에 빠져 시바견 이모티콘 작가가 됐다. 털 알레르기가 있는 가족을 고려해, 온라인에서 만나는 자신만의 반려견 ‘찌바’를 만들었다. 최씨는 시바견의 귀여운 사진을 보면서 어린 시바견 찌바의 캐릭터를 잡았다. 찌바는 삶의 밝은 부분만 보는 경향이 있고, 솔직하지만 주위 환경 영향도 많이 받는 성격이다. 지난해 7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처음 탄생한 후 최근 3탄까지 그렸다. 1탄만 4만개가 팔렸다고 한다. 최근 소집 해제됐다는 최씨는 낮에는 광주광역시 노인요양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찌바를 그렸다. 최씨는 찌바의 볼을 가장 사랑한다.

“일단 볼이 중요해요. 빵빵하고 모찌모찌한 느낌을 살려서 그려요. 눈·코·입을 작게 그려야 더 귀엽고, 강아지니까 목이 없어요.”

시바견의 세모난 눈썹도 인기를 끌어올리는 비결이다. 일러스트레이터 햄햄(31)씨는 시바견의 눈썹이 감정표현을 하기가 좋아 그리게 됐다고 했다. 눈썹이 있으니 더 사람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2017년 햄햄 작가는 시바견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쓰고 그렸다. 그는 자신의 책 ‘주인님, 어디 계세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유기견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10대 소년·소녀의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진돗개도 좋아해요. 하지만 진돗개는 늠름하고 믿음직한 이미지가 강하죠. 시바견의 눈썹과 작은 체형이 이 작품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시바, 이름마저 매력적

시바. 일본어로는 작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어 욕과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더 끌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바견의 풍부한 표정과 함께 ‘뭘 봐, 시바’같이 ‘시바’를 뒤에 붙이면 욕인지 시바견을 부르는 건지 아리송하지만, 왠지 웃음이 나고 기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나꼼수가 시바견 때문에 자신들의 추임새로 ‘씨바’를 붙인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바견 짤이나 사진을 보면 그 표정이 매우 달관적, 초월적이다. ‘시바’ 이름과는 안 어울리는 이 표정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기묘한 효과가 있다”라며 “억압받는 사회 분위기에서 열망을 언어화하지 못하는 이 시대 청년 문화와 닮았다”고 풀이했다. 김 소장은 2~3년 전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팬덤 문화 안에서 시바견을 닮았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때 시바견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2030인 작가 동동과 햄햄 모두 독자들도 “욕하는 것 같은 재미”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햄햄 작가는 자신의 두 번째 책으로 ‘그래 백수다 시바’를 준비 중이다.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쾌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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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의 슬픈 느낌을 표현하다 밝고 발랄한 시바견을 그렸다. 이 그림 한장으로 두 번째 책 ‘그래 백수다 시바’를 계약했다고 한다. 햄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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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예정인 ‘그래 백수다 시바’의 한 장면. 햄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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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하고 귀여운 매력에 일본·한국에서 열광

일본에서는 시바견이 가히 ‘국민개’다. 몸집이 아주 크지는 않아 주택에서 키우기 적당해 인기라고 한다. ‘월간 시바’라는 시바견 전문 잡지까지 있다. 이 회사 일러스트레이터인 가게야마 나오미는 10년 동안 반려견인 곤과 테쓰의 이야기를 담은 ‘시바견 곤 이야기’ 10권을 포함해 시바견 관련 책을 수십권 냈다. 한국에서는 한겨레출판이 4월 현재 ‘시바견 곤 이야기’ 3권까지 번역했고 앞으로 10권까지 출판할 예정이다.

이 책을 기획한 임선영 한겨레출판 문학팀장은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니 시바견의 매력이 보였다. 아마존 재팬을 뒤지다 이 책이 단행본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됐다. 반려문화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에서 이미 큰 관심을 받았기에 한국에서도 소개할 만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출판사가 홍보를 거의 안 했는데도 지난해 여름 나오고 5천부 가까이 팔렸으니 시바견이 “친근한 매력”으로 인기인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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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견 곤 이야기 1권 34.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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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견 사랑이 한국까지 전해진 것을 두고 한국과 일본 문화의 유사성도 엿볼 수 있다. 책 ‘일본 대중 문화의 이해’를 쓴 박진수 가천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어문학과 교수는 “개를 잘 모른다”라면서도 현대 일본인들의 심미적 태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인간은 기호를 소비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좀 더 재미있고 예쁘고 귀엽게 만들 수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의 일본에서는 ‘카와이(귀엽다)’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쓴다. 귀여운 면을 강조하면서 일본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싶고, 한국과 일본은 생활환경이 비슷해 감성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에 문화를 공유하기 더 쉬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바견은 정말 감정대로 표정을 짓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느낀 대로 시바견의 감정을 추론해도 되는 걸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검찰에 출석할 때 표정을 “평온하고 행복하다”라고 분석했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표정 분석프로그램인 페이스 에이피아이(API)를 이용해 다양한 사진 속 시바견의 표정을 분석해보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동물까지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 관계자는 “사람 얼굴 사진만으로 학습시킨 프로그램이라 아직 동물 표정 분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동물 데이터도 입력하면 언제든 가능하다. 예를 들어 동물의 감정을 잘 아는 전문가가 딥러닝 모델을 만들어 사진을 계속 입력하면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혹시 귀여운 외모 때문에 시바견을 키우고 싶은가. 그것은 시바와 반려인 모두에게 불행일 수 있다. 시바견을 키우고 있다는 한 독자는 “털빠짐은 기본이며, 깔끔해서 실외배변만 하기 때문에 산책은 매일 필수이고, 기백이 보통이 아니라 물리지 않고 무는 종이다. 파양되는 경우도 있다”라고 함부로 시바견을 입양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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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견이 눈을 감고 있다.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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