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적용되었던 항공보안법 상의 ‘항공기 항로변경죄’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한시름 놓는 듯 했다. 2015년 1심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형을 선고받은 이후 항소심에서 선고한 ‘항공기 항로변경죄’에 대한 무죄판단 부분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되어, 조 전 부사장은 마침내 구속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땅콩회항 판결, 죄형법정주의 `해석론`이 운명 갈랐다). 그러나 ‘미투 선언’의 바람을 타고 시작된 내부 고발은 부당한 갑질에 대한 폭로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조현아 사건’을 보면서도 근신하지 못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결국 연이은 형사 잔혹사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에도 화근이 된 것은 ‘을’을 향한 무자비한 ‘갑질’이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이자 조 전 부사장의 동생이기도 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회의 도중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광고 대행사 팀장의 얼굴에 물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물만 뿌린 것인지, 항간에 들려오는 이야기처럼 사람을 향해 물컵을 집어 던지기까지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을 하고 얼굴에 물을 뿌리는 행위는 형사상 모욕죄(형법 제311조) 또는 폭행죄(형법 제260조)에 해당할 수 있고, 만약 사람을 향해 물컵까지 집어 던졌다면 물컵은 형법상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여 특수폭행(형법 제261조) 또는 특수협박(형법 제284조)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전자의 경우에는 친고죄 또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거나 도중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 해당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되거나 ‘공소기각’ 판결을 받게 된다. 후자의 경우는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한 경우에도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고 기소까지도 할 수 있지만, 피해 정도가 크지 않고 조 전 전무가 초범임을 고려하면 기소를 하더라도 양형은 벌금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조 전 부사장 및 조 전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이사장의 경우에는 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 및 폭행을 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경우는 형법상 상습폭행(형법 제264조 및 제260조) 및 모욕죄(형법 제311조) 등의 조항이 적용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앞서 살펴 본 조 전 전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와의 합의 등을 통해 선처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한진그룹 일가가 대한항공을 통해 공공연히 해외 명품 등 사치품을 밀수해 왔다는 점이다. 최근 어느 여행객의 카메라에는 대한항공 공항 상주직원들이 조 전 부사장의 해외구매 물품을 재빨리 찾아서 수하물 택(tag)을 버리고 조심스럽게 운반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 장면은 세관직원들도 함께 보고 있었지만, 모른 척 통과시켜 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세청은 지난 21일에는 조 회장 일가에 대하여, 23일에는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전산센터 및 서울 중구 한진관광 사무실, 대한항공 김포공항 사무실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압수수색을 실시하였다. 관세법 상 관세포탈죄(관세법 제270조)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관세청의 수사 결과 수입한 물품의 원가가 2억원 이상으로 확인되는 경우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 금액이 5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5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밀수 및 조세 포탈이 조직적으로 기획되었고, 상습의 습벽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특가법 제6조 제8항 상의 상습 관세포탈죄가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해당 범죄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관세청 직원들이 이를 몰랐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형법 제137조)가, 이를 묵과하는 대가로 금전 및 향응 등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면 뇌물수수죄(형법 제129조)가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사치품을 사들이기 위해 쓴 돈이 과연 개인의 돈인지 회사 돈인지에 따라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 혐의(형법 제350조)도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은 부메랑이 되어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운명을 옭죄고 있다. 자초위난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Copyright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