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손기은의 新식도락] 원초적 불 맛에 반하다... 바람 불면 '불티나는' 바베큐 레스토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복잡한 고급 요리 가고 원초적인 바비큐 뜬다
고기도, 채소도, 불 향 입히면 특별해져… 냄새 밸 걱정 없이 불맛 즐기는 레스토랑

조선일보

복잡하고 섬세한 파인 다이닝 요리기법이 한창 불붙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셰프들이 원초적인 기법에 다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진은 도마./손기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음식과 술 기사를 다루는 에디터라 계절에 따라 비슷한 생각이 물레방아 돌듯 떠오른다. 날씨가 풀리고 봄과 여름의 경계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늘 떠오르는 음식이 ‘그릴 요리’ 혹은 ‘바비큐’다. 어쩐지 집 안에 있으면 좀 억울할 것 같은 쾌청한 날씨에 밤바람까지 달콤하게 불어오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불에 구운 무엇이 생각난다. 성수동 돼지갈비 골목이나 자양동 양꼬치 골목도 머릿속에 스치고 태울 듯이 구워 단맛을 끌어올린 그릴 자국난 파인애플을 떠올릴 땐 속절없이 입에 침이 고인다.

한국에서 바비큐라고 하면 불붙은 숯 위에 그릴을 깔고 돼지고기 목살, 삼겹살, 새우 몇 마리, 양송이버섯, 김치를 올리고 상추 쌈을 싸 먹는 식사 한판이 먼저 생각난다. 미국인들에게 바비큐란 지역마다 특색이 확실한, 통고기를 훈연기로 오랫동안 익혀서 조금씩 잘라 먹는 요리를 일컫는다. 어떻게 굽느냐, 얼마나 굽느냐는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불에 식재료를 올리고 그 뜨거운 불과 연기의 향을 입혀 직설적이지만 감동적인 맛이 나도록 하는 요리는 어디에나 있다.

◇ 원초적인 ‘불맛’에 침이 고인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음식 다큐멘터리 ‘어글리 딜리셔스’의 ‘바비큐’ 편에서는 미국의 요리사이자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자인 데이비드 장이 일본의 한 야키도리(닭꼬치 요리 전문점)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장인이라 부를만한 풍모의 일본인 셰프가 비장탄 위에 그릴을 올리고 닭기름이 떨어지는 것을 면밀히 관찰하며 천천히 구워내는 닭꼬치 하나를 맛본 데이비드 장은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가 셰프에게 포옹을 건넨다. 그렁그렁해진 눈의 셰프를 뒤로하고 가게를 나선 데이비드 장은 미국식 ‘바비큐’ 정의에 물음표를 던지며 불 맛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역설한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상관없다. 불 맛을 입은 재료는 예상 가능한 맛을 지녔지만, 늘 기대치를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 집에서나 캠핑장에서나 누구나 경험해봤다. 채소 하나를 구워도, 고기 한 점을 구워도 제대로 불 향을 입은 음식 하나가 입에 처음 들어올 때의 기분을 떠올린다면 누구라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것이다. 고기를 통으로 구워내는 바비큐 전문점은 아니지만 섬세하게 불을 다루며 양식 요리에 불 향을 덧입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한다. 자욱한 연기 때문에 옷에 냄새 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단정한 레스토랑이며, 한 접시 위에 다채로운 맛이 더해져 새로운 그릴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요리가 있는 곳이다.

그릴 레스토랑을 트렌드라고 말하기엔 그릴은 이미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요리법이다. 수비드(장시간 저온조리) 기법이나 복잡하고 섬세한 파인 다이닝 요리기법이 한창 불붙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셰프들이 원초적인 기법에 다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좀 더 자연스럽다.

참숯으로 불 향 입힌다, 서래마을 레스트로

조선일보

작고 아담한데 층고가 높아 유럽의 어느 레스토랑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이곳 주방을 지키는 셰프는 얼굴을 보면 낯이 익은 장지수 셰프. 음식 채널에서 조용하고 섬세하게 요리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데, 역시 자신과 어울리는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내고 있다. 평온한 홀에 비해 주방은 좀 더 원초적이다. 참숯을 이용한 그릴 요리에 초점을 맞추고 식재료에 불 향을 입히고 있다. 그릴이 잘 된 패티가 들어간 버거, 그릴에 익힌 고등어를 더한 파스타, 불 향을 머금은 문어로 만든 샐러드 등이 주력 메뉴다. 고기 맛 화끈하게 살린 스테이크는 누구라도 좋아할 맛이다.
[서울 서초구 서래로6길 10, 휴무일 없음, 휴식 시간 오후 3시부터 5시 반까지]

불에 그을린 채소조차 아름답다, 도곡동 도마

조선일보

매봉역 사거리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지하로 내려가면 도마가 있다. 간결하게 정리된 메뉴판만 봐서는 어떤 요리가 나올지 알 수 없는데, 김봉수 셰프의 설명에 이끌려 주문하다 보면 어떤 걸 시켜도 밋밋하거나 지루한 접시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무와 숯으로 굽는 고기 요리도 좋고, 점심에 판매하는 멍게 비빔밥과 조개 젓갈 비빔밥처럼 한식을 살짝 트위스트한 메뉴도 훌륭하다. 불에 그을린 채소조차도 하나의 색감으로 활용해 예쁘게 프레젠테이션해서 먹기 전부터 눈이 즐거운 곳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26길 41, 휴무일 없음, 휴식 시간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바에서 즐기는 바비큐, 합정동 페페로니

조선일보

페페로니, 프렙을 운영한 윤준상 셰프가 ‘차콜(숯) 바’라고 설명을 붙인 레스토랑을 다시 열었다. 이름도 다시 페페로니. 비장탄만 쓰는 그릴 위에 고기, 해산물, 채소, 빵, 무엇이든 올려 균형감 있는 한 접시를 만들어낸다. ‘바’라는 수식어답게 모든 자리가 주방을 바라보고 있는 카운터 자리로 되어 있어 술 한잔에 작은 요리 하나 혼자 즐기기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우 채끝 스테이크에는 프랑스산 금 소금과 질 좋은 올리브유를 곁들여 맛의 층을 쌓았고, 양고기 스테이크 역시 부드럽고 그윽하게 구워서 내놓는다. 가지나 문어처럼, 불 향을 만나면 한층 더 살아나는 식재료의 변신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3길 14 딜라이트스퀘어2차 1층, 월요일 휴무, 저녁만 영업]

조선일보

◆ 손기은은 남성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GQ KOREA’에서 음식과 술을 담당하는 피처 에디터로 11년 째 일하고 있다. 이제 막 문을 연 레스토랑의 셰프부터 재야의 술꾼과 재래시장의 할머니까지 모두 취재 대상으로 삼는다. 바람이 불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신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란 없으니까…

[손기은 GQ 에디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