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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한겨레 프리즘] 관료냐 개혁파냐 이전에 / 황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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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황보연
정책금융팀장


“1기 내각은 몽땅 개혁파로 채우는 게 좋다. 축구팀도 서로 사인이 맞아야 경기가 잘되지 않나.”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초대 내각이 한창 꾸려지던 때라, 관전평이라도 들어볼까 해서 건넨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내년(2018년)이 되면 지방선거도 치러야 하고 개헌 논의도 본격화할 테니 올해 안에 개혁과제들을 실행에 옮겨놔야 한다. 그러려면 관료 출신보다는 개혁파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런 인식엔 참여정부 시절, 관료 출신과 개혁파 간의 갈등이 개혁과제 추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승진구조 때문에 위로 올라갈수록 개혁성향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봤다. 역대 정부에서 특히 경제 쪽은 전문성과 위기 대응에 능하다는 점 때문에 관료 출신을 많이 기용했지만, 어정쩡한 조화와 균형은 개혁 추진에 이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정통 관료 출신인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청와대 개혁그룹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나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방안 등의 이슈를 두고 빈번하게 마찰을 빚었다. 심지어 이 부총리는 “(개혁그룹인) 386세대가 경제를 모른다”(2004년)는 직격탄을 날려 갈등을 키운 적도 있다.

과거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 16일 낙마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태를 보면서다. 김 전 원장이 취임 보름여 만에 외유성 출장, 셀프 후원 논란 등으로 사퇴하기까지, 청와대는 금융개혁을 위해선 개혁 인사를 기용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며, 정국을 통째로 삼켜버린 잇단 의혹 제기도 그에 따른 진통쯤으로 여겼다. “해당 분야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은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문이 이런 기류를 잘 드러낸다. 여기엔 문 대통령 스스로도 참여정부 시절부터 겪었을 ‘인사’에 대한 고뇌가 반영됐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국민 눈높이’를 살펴야 할 청와대가 김 전 원장 논란을 두고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초지일관 ‘괜찮다’고만 방어할 일이었는지 의문인 탓이다. 무엇보다 출범 2년 차에 와서야 청와대가 강조하는 ‘금융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부터가 아리송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출범 이후 내놓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금융 쪽은 ‘가계부채 위험 해소’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서민 재산형성 및 금융지원 강화’ 정도가 전부다. 지난해만 해도 청와대가 ‘금융정책’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말까지 나돌았던 터다.

물론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재벌그룹을 겨냥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편, 금융그룹 통합감독 등에 관련된 법안이 올 하반기 국회로 넘어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른바 ‘모피아 저격수’로 불리던 김 전 원장이 법안 통과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만한 인물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이를 정말 확실하게 추진하려 했다면, 감독집행기구인 금감원이 아닌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모두 관장하는 금융위원장을 시켰어야 했다. 관료의 저항이 가장 큰 ‘금융감독 체계 개편’(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의 분리 등) 역시 정권 초기부터 추진해도 쉽지 않은데, 청와대가 지난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다.

경제관료 출신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예정에도 없던 ‘어색한 회동’을 하고, 때아닌 “금융혁신” 의지를 다졌다. 요즘은 과거처럼 정권과 대놓고 맞설 관료도 잘 안 보인다. ‘외과의사’를 고르기 전에 ‘수술 부위’부터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불신만 가득해진 교육정책에서 확인된 일이 아닌가.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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