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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코리아게이트’ 핵심 인물 박동선씨 별세…향년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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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코리아게이트’의 핵심 인물 박동선씨. 한겨레 자료사진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불거진 이른바 ‘코리아게이트’의 핵심 인물이었던 박동선(89)씨가 19일 별세했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전했다. 이 매체는 이날 저녁 6시45분께 박씨가 지병이 악화되어 입원 중이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을 인용해 보도했다. ‘코리아게이트’는 인권 문제 등으로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압박을 받던 박정희 정부가 미국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박씨를 내세워 미국 정치인들을 상대로 뇌물 로비를 벌인 사건이다.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박씨는 17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했고, 워싱턴 시내에서 ‘조지타운클럽’이라는 사교클럽을 만들어 인맥을 쌓았다. 60년대 말에는 리처드 해너 당시 하원의원의 영향력을 이용해 한국 정부로부터 쌀수입 중개권을 따내는 등 사업가로 활동했다.



미국의 주한미국 감축과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으로 한미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던 1975년, 미 하원의 한국 인권청문회에서 전 중앙정보부 요원이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미국 내 반박정희 여론과 활동을 무마하려고 대규모 회유·매수·협박·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증언을 했고, 이듬해인 1976년 10월 워싱턴포스트가 박씨가 미국 시민권자인 사업가 김한조(2012년 별세)씨와 함께 중앙정보부의 지원을 받고 리처드 해너 등 미국 정치인 90여명에게 박 정권 지지의 대가로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건넸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1978년 2월 ‘코리아게이트’의 핵심 인물 박동선씨가 2차 심문을 위해 검찰청에 출두하는 모습. 정부기록사진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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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코리아게이트’라 불리며 미 의회에서 관련 청문회인 ‘프레이저위원회’가 열리는 등 파장을 일으켰고, 미 의회가 요구한 박씨의 소환을 박 정권이 거부하면서 한미관계가 한때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박씨는 사면을 조건으로 1978년 청문회에 출석해 32명의 의원에게 85만달러 상당의 선물을 제공했다고 인정했으나 한국 정부와의 관계는 부인했고, 끝내 기소를 면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되레 워싱턴 로비계에서 더 명성을 얻어 로비스트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자금을 받아 유엔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벌였다는 혐의로 미국 검찰에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2008년 9월 조기 석방되어 귀국했다.



2013년에는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중국어판 자서전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14년여를 일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 아버지가 어려운 나라의 경제를 살리려 죽기살기로 힘쓰는 장면을 옆에서 봤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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