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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종석 칼럼] 남·북·미 정상이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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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금 남·북·미의 정상은 기대치를 뛰어넘어 한반도 평화에 올인하고 있다. 그들의 동기는 각각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실현하려는 평화는 보편적인 인류가 소망하는 평화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봄에 시작된 한반도의 평화 노력이 가을에는 귀중한 결실을 맺길 기원한다.



철이 나서 택한 직업이 북한을 연구하고 한반도 문제를 고민하는 학자였다. 남북 대결의 종식과 한반도 평화·번영을 꿈꾸며 30년의 세월을 보냈다. 한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 통일부 장관으로 공직에 있으면서 평화의 문턱까지 다다른 적도 있었다. 2005년 한국의 주도적 노력 아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9·19 공동성명이 도출될 때였다. 그러나 끝내 북-미 대결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평화를 향한 약속은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이후 북핵문제의 악화 속에서 우리는 입으로 평화를 외치면서도 엄습하는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세계 냉전구조가 해체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가건만 한반도는 냉전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이 조건부이지만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린다. 분단 73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지금의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대결구조의 두 축을 이루는 남북, 북-미 대결이 동시에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우리는 남북 대결 상황을 해소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북-미 적대구조가 엄존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결국 대결국면으로 회귀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정상회담의 연쇄 개최로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촉진하며 냉전구조를 해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둘째, 한반도 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북한이 능동적으로 전략적 결단을 하고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북한이 남한과 중국의 설득에 못 이겨 수동적으로 협상의 장에 참여했던 김정일 시대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두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주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북-미 회담에서 협상카드로 활용하리라고 예상했던 중요 현안에 대해 정상회담 전에 선제적으로 양보 조치를 취했다. 그는 대화 시 전략도발을 중단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이해한다는 의사표시를 했으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결정서를 통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를 결정했다.

셋째,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대타결이 이루어진다면, 이후 정세는 비교적 무난하게 평화·번영의 흐름을 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조건부 비핵화의 결단을 내리면서 경제에 올인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추구하는 경제는 구식의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아니다. 미국의 자본과 기술 도입도 마다하지 않는 대외개방 지향의 시장경제다. 한반도 비핵화 이후 정세는 남북경협을 비롯하여 북한과 외부 세계의 활발한 경제협력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제협력은 궁극적으로 북한이 외부 경제와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것이며 이후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할지 모를 국제 외교안보적 갈등도 완화시켜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연쇄 개최에 가슴이 설렌다. 물론 누구나 경구처럼 되뇌는 ‘신중함’도 필요하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봄을 만들어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이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관점을 고수해서는 이 흐름을 따라잡기 어렵다. 급변하는 정세에 한마디 조언이라도 할 요량이면 창조적·실용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대담한 발상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남·북·미의 정상은 기대치를 뛰어넘어 한반도 평화에 올인하고 있다. 그들의 동기는 각각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실현하려는 평화는 보편적인 인류가 소망하는 평화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제 한반도 대결구조의 해체를 위한 중대한 첫걸음으로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은 ‘한반도 판갈이 공사’에서 입구이며 북-미 정상회담은 출구가 되어야 한다. 두 정상회담이 ‘전쟁 없는 한반도, 핵무기 없는 한반도’ 실현을 위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 거주민들이 더 이상 전쟁을 걱정하지 않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봄에 시작된 한반도의 평화 노력이 가을에는 귀중한 결실을 맺길 기원한다. 그 결실의 우수한 품질보증을 위해 남·북·미 정상이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는 날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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