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0 (금)

[세상 읽기] 냉전의 광기를 넘어 민족 이성으로 / 김누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반도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놀라운 평화의 낭보가 날아든다. 대전환의 폭풍이 한반도를 뒤덮어온 냉전의 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남북 화해 시대, 한반도 평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숨 가쁜 세계사적 격변은 문재인 정부의 어깨에 무거운 역사적 책무를 얹어놓았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혁명정부답게 “대담한 상상력과 창의적 해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냉전시대의 낡은 사고와 관행으로는 대전환의 원심력을 감당할 수 없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목전에 다가왔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는” 일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회담이 성공한다면, 그 역사적 의미는 참으로 지대할 것이다.

첫째, 남북 정상회담은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평화를 위협해온 ‘냉전체제’를 최종적으로 종결짓는 대사건이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중심으로 작동한 동서 냉전체제는 1990년대에 붕괴했지만, 동북아 지역에서 새롭게 형성된 한미일-북중러 간의 ‘신냉전체제’는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 이를 종식할 역사적 기회가 우리 손안에 쥐여진 것이다. 남북의 의지에 따라 세계를 양분해온 적대적 진영구도를 허물고 인류 평화로 나아갈 길을 마침내 열 수 있다.

둘째, 이번 회담은 동북아 평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남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한다면, 그것은 동북아 평화공동체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반도와 중국, 일본이 ‘유럽연합’과 같이 항구평화와 공동번영을 목표로 한 ‘동아시아연합’(East Asian Union)을 구현하는 것도 단순한 꿈이 아니다.

셋째, 이번 회담은 한반도 평화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의 형식이 양국체제든, 국가연합이든, 연방국가든 상관없이, 상호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남북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지난 70년간 ‘적대적 공생’ 체제에 기생하여 연명해온 남북 내의 반통일, 반평화 세력은 역사의 무대에서 점차 사라질 것이다.

독일의 통일 과정을 돌아보면, 역사적인 회담을 앞둔 문재인 정부가 참고할 만한 타산지석들이 더러 있다. 우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자세다.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허물려면 먼저 ‘우리 안의 냉전의식’부터 부숴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국판 ‘동방정책’이라 불리지만, 그 명칭에서부터 여전히 ‘부드러운 냉전의식’이 깔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명예로운 비핵화의 명분을 주어야 한다”는 게이오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의 조언(<경향신문> 2018년 4월20일치)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브란트 정부처럼 상황을 선제적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신중하게 성찰하되 대담하게 행동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 이성’의 관점에 서는 것이다. 철 지난 냉전의 광기에서 해방되는 것, 강대국의 대리인 구실에서 벗어나는 것, 진영 논리보다 민족의 현실을 중시하는 것이 민족 이성의 요청이다.

김대중 정부가 군사독재를 종식한 ‘민주정부’, 노무현 정부가 권위주의를 타파한 ‘반권위주의 정부’라면,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킨 ‘평화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에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다. 이제 냉전의 광기에 눈먼 기나긴 적대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족 이성이 눈뜬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갈 때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