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에는 일반인이 신문 라디오 TV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여론을 파악했다면, 오늘날은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매체가 그 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과거 대중매체의 1면 뉴스로 중요한 의제를 파악하고, ‘…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식의 보도에서 여론을 유추해 냈던 생활양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美 버지니아 테크의 킴벌리 위버 교수는 ‘친숙도에서 의견의 인기를 유추하다: 반복된 목소리는 합창으로 들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하였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정치ㆍ경제 분야 사안을 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짐작해 보라’고 지시하고,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입장의 발언을 한 경우와 한 사람이 반복하여 같은 입장을 제시하는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한 사람의 반복적 의견이 여러 사람의 통일된 의견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게 확인됐다.
조사업체 워드미터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 이용자 1,300만명 중 댓글을 쓴 아이디(사용자 이름)는 11만개, 10개 이상의 댓글을 쓴 아이디는 6,000명이었다. 한 사람이 최대 세 개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는 네이버의 현행 운용방식을 생각했을 때 댓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6,000명보다 훨씬 적을 공산이 크다. 게다가 절반 이상의 댓글이 정치 분야에 집중되어있는 것도 동기를 의심하게 하는 정황이다. 이 경향은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2008년 인터넷 진흥원이 4개월간 3개의 포털에 올려진 댓글 7만건을 분석, 작성자의 5%(포털 뉴스 이용자의 0.1%)가 전체 댓글의 30.5%를 쓰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 때는 욕설이나 비방 등 악성 댓글이 전체의 6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주제 별로는 정치가 21.2%로 가장 많았다. 10년 전부터 관찰된 현상이니, 지금은 더욱 심화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세칭 ‘드루킹’ 사건은 한국 인터넷 댓글 문화의 다양한 취약점을 보여주고 있다. 굳이 국가기관이 아니더라도, 한 줌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여론을 만들어내고 나아가서 이를 주류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마땅한 기술적 해결책도 없다. 현재 한 대형 포털이 호감도(인기) 순서로 댓글이 먼저 보여지도록 하고 있는데, 최신 글이 먼저 보이도록 바꾸면 여론조작을 꾀하는 쪽에서는 많은 양의 글을 꾸준히 올림으로써 자신들이 작성한 글이 최신 글이 되도록 하면 된다. 모든 글자가 똑 같은 댓글을 다른 아이디로 올리는 것을 검색하여 삭제한다면,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표현을 살짝 바꾸면 된다.
과거 가수 오디션 방송에서 지지하는 가수에게 문자로 투표하는 시스템은 동일인이 여러 번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포털에서는 이 헛점을 막고자 아이디 하나로 인기 투표를 한 차례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같은 단체의 사람들이 단기간에 인기도를 급등시키면, 일반인들이 새로 등록된 인기 댓글ㆍ뉴스를 보고 군중효과에 의해 추가로 지지를 보내는 일이 벌어진다.
이제까지 뉴스 포털의 운용은 자율규제에 맡겨왔다. 어떤 뉴스를, 어느 독자의 댓글을 먼저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편집권을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하여 소수 단체의 여론조작에 악용되도록 방치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고, 기술적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현 상황에서는 한시적이라도 제도적 개선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박병호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ㆍ정보미디어연구센터장
박병호 카이스트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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